끊임없이 왕권 강화를 꿈꿔온 정조는 자신의 생각이 함축된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충성스러운 신하, 군사력, 자금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는다. 정조는 수도인 한양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 신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곧 실행에 옮긴다. 수원화성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정조는 자신의 야망을 구현시킬 대역사를 당시 30세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에게 맡겼다. 당초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공사는 1796년 10월, 단 34개월 만에 낙성연을 치렀다. 역사학자들은 이같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약용과 같은 ‘젊은피’를 수혈하여 종전과 차원이 다른 계획에 따라 화성을 건설했기 때문이라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젊은피’는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할 때 곧잘 등장한다. 그런 만큼 정치적 수사(修辭) 성격도 강하다. ‘젊은피’를 가장 적절히 이용하고 활용한 사람은 아마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1999년 3월, 당시 김 대통령은 ‘젊은피 수혈론’을 내놓고 당(黨)개혁을 이끌며 다선·고령 현역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를 예고해 정가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그때 수혈된 ‘젊은피’로는 이번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송영길 전 인천시장을 비롯 이인영·오영식 의원과 임종석 전 의원 등이며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회에 입성한 뒤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적 성장을 거듭했다.
1년 뒤인 2000년, 집권당의 변화에 충격을 받은 당시 한나라당 내에선 끓는 ‘젊은피’를 자처하는 의원들의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가 출범했다. 이 모임을 통해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를 필두로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자,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 정병국 의원 등이 ‘젊은피’로서 당내 혁신 활동을 주도했고 적잖은 성과도 거뒀다.
그로부터 14년, 모임의 핵심이던 남경필 의원이 도지사에 당선돼 경기도 중심에 섰다. 도민이 선택한 ‘젊은피’로서 선거기간 내내 강조한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어떻게 경기도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