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따라 오른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녹음 사이로 들어차는 바람이 흥건히 젖은 몸을 씻어준다. 적당히 드리운 그늘과 산새 소리가 어우러져 지친 발걸음을 달랜다. 시야를 시원하게 해주는 푸름과 자연이 내는 소리는 깨끗하다. 낮게 흐르는 물소리가 그렇고,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며 간혹 들리는 새들의 소리가 그렇다.
산을 올라보면 산도 사람살이와 비슷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을 치닫다 보면 완만한 경사지를 만나게 되고 숲이 우거졌다 싶으면 어느 순간 하늘이 보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산이 가파를수록 계곡이 깊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야 하고, 길을 잃으면 온 산을 헤매는 것이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너나없이 살기 힘들다고 한다. 역 광장에 노숙자가 부쩍 눈에 띈다. 벤치를 차지하고 술판을 벌이고 만취 상태에서 싸움을 하는가 하면 주변상가를 돌며 돈을 구걸한다. 그곳을 지나는 행인은 가급적 이들을 피해 돌아간다.
그들이 처음부터 노숙생활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는 사업에 실패하고, 어떤 이는 가정 파탄으로 인한 문제 등 경제적 정신적 여러 이유가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을 것이다.
오십 중반의 자영업자가 노숙자가 되었다가 결국 폐인이 되는 것을 보았다. 가구점을 하는 남자였다. 매장의 규모도 제법 크고 남자가 성실하여 내실 있는 경영을 하였는데 젊은 여자만나 재혼 하면서 문제는 시작됐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돈 때문에 혼인을 했고, 불과 1년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남자는 재산을 다 잃고 법정에 서는 일까지 생기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결국은 걸인이 되어 떠돌다 얼마 못 가 객사했다는 소식이 떠돌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밀려난 결과이다.
이처럼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눈물겨운 사연을 지니고 있다. 재활시설을 통해서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도 많지만 자신감마저 상실하여 거리를 떠돌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산도 그렇다. 어느 산이든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다. 험하고 힘든 산일수록 풍광이 좋고, 반면 오르기 쉽다 싶으면 숲만 무성할 뿐 볼거리가 밋밋한 것을 보면 산이든 세상이든 그만큼의 대가와 노력을 치러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정상에 올라 멀리보이는 산을 보면 산의 지형과 지세를 한눈으로 볼 수 있듯 우리도 각자가 계획하는 정상을 향해 뛰고 또 뛰어야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쉽게 얻은 결과일수록 쉽게 무너진다. 세상에 거저는 없다.
얼마 전 충남의 쌍둥이 오피스텔이 무너진 것도 그랬다. 겉으로 보기엔 깔끔하고 세련되게 포장해 놓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재의 30% 정도를 줄여 만든 부실 건물이었다. 속 빈 강정인 셈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입주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사고가 발생해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자칫하면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산도 마찬가지다. 난개발로 인한 자연훼손으로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무리한 산행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내가 나에게 미안하지 않고 몸에서 혹은 양심에서 보내는 신호를 지키면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 우리 모두가 편안한 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