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3 (토)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지칠 줄 모르는 짝사랑!

 

6월, 아까시꽃은 사라졌다 짙은 녹음만 남기고. 하얗게 묻어나는 향기에 취해 몽유병자처럼 늦은 밤에도 나무 밑을 서성거리게 했던 시간들. 수십 년 반복된 사랑이라면 이제 지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짝사랑으로 남아있는 아까시꽃. 흔히 아카시아로 불리는 아까시는 사실 원래 이름이 아까시나무이고,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와 전혀 다른 종류로 노란 꽃을 피우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

아까시나무는 한국전쟁 이후 민둥산이 많았던 우리나라에 산림조성 사업으로 들여와 1970∼1980년대 이후부터 민둥산을 채우며 지천으로 번져 아카시아로 불려왔던 터라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더 친근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 특별히 예쁘지도 않고 품위 있는 꽃도 아닌 아까시꽃이 나에게 사춘기 달콤한 설렘처럼 남아있는 건 아마도 이른 봄이면 여지없이 찾아와 낙관처럼 찍어대는 그 꽃의 진한 향기 때문일 것이다.

향기는 사람을 불러 모으기도 하고 추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그 사람 주변을 맴돌게도 한다. 고성산 산장휴게소 건너편 할머니 손칼국수집, 그 허름한 포장마차에도 5월 향기가 뿜어져 나왔었다. 하얗게 드리워진 아까시꽃을 배경으로 얼큰한 칼국수를 팔고 계시는 노부부. 그 두 분에게선 아까시꽃과 어우러지는 또 다른 향기가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적적하여 산자락 끼고 사람 만나고픈 마음에 시작했다는 일.

향기는 밤이면 더 짙어지는 법. 한적한 밤 시간 아까시꽃 향기에 숨이 벅차오를 때쯤 칠순 넘은 주인 할아버지의 콘서트가 시작되고, 하모니카로 불러주는 몇 곡 노래에 흥이 더하면 기타연주로 이어지는 낭만. 그 부족한 듯 허술한 낭만에도 진한 향기가 있어 함께 하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으로 이어졌기에 매년 잊지 않고 사람들은 그곳을 찾았으리라.

향기는 자연에서만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람 각자에게서도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향긋한 사람, 앙칼진 사람, 무던한 사람, 강한 사람 등 사람마다의 색깔로 묻어나는 그 향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 지키며 변함없이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 특별한 이해관계는 없지만 문득문득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자연 속의 변함없는 꽃향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뭇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줄 아는 진정한 그런 꽃향기 말이다.

수십 년 짝사랑에 빠지게 한 아까시꽃의 향기처럼, 고향을 찾아 떠나셨다는 손칼국수집 노부부의 향기도 나에게는 추억 속의 짝사랑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만나게 될 5월 아까시꽃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면 노부부가 없는 어느 손칼국수집에서, 또는 어설픈 내 하모니카 솜씨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기도 하겠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산을 오르다보면 맡게 되는 향기가 하나가 아니었듯, 갖가지 향기가 어우러져 그 산의 향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에, 또 다른 나를 들뜨게 할 그 향기 만나게 될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문득 만나게 될 그런 향기 말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

 







배너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