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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모낸 지 55일째 풍경

 

‘밥이 힘이다.’ 예부터 부모님이 하던 말씀이다. 지금은 산업화에 밀려 벼농사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있는듯해도 아직은 체력이 국력인 것이다.

시흥의 힘이 자라고 있는 호조벌에도 어느새 모를 낸 지 55일째다. 그동안 농부들의 보살핌으로 논의 벼들은 초록의 초세를 튼튼하게 키우고 있다. 남편은 말일부터 장마가 질 것이라고 미리 일기를 점친다. 장마가 지기 전에 호조벌 오구재에 있는 논으로 나갔다.

요즘 논이 있는 벌판의 풍경은 벼 포기의 상태와 병충해 그리고 영양 상태까지 파악하고 논둑의 상태와 물꼬가 제대로 잘 되어있는지 농부들이 괭이를 어깨에 메거나 오토바이나 자전거 혹은 자동차를 타고 이따금씩 다녀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오월 초순께 모를 내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어린모가 뿌리 내려 잘 자랄 수 있도록 벌레를 막아주고, 영양을 공급해주고, 잡풀을 뽑아주고, 물이 마르면 양수기로 물을 대주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이렇게 호조벌을 지키는 농부들은 모두 다 똑같이 논에서 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지나갔다.

논둑에서 벼들을 바라보니 벼들은 유아기를 막 끝내고 한 사람으로서 잘 성장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초등학생 시절인 것이다. 완전한 벼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자라고 있다. 딱 벌어진 포기로 병 없이 자라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줄 맞추어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운동회 날 일제히 ‘열중 쉬어, 차려’ 자세 같기도 하고, 황금들녘으로 뛰기 위해 출발선에 선 선수 같기도 하다.

호조벌은 농지정리가 잘 되어 있는 시흥시 중심에 있는 곡식창고나 다름없는 벌판이다. 차 한 대가 달릴 수 있도록 사방으로 곧게 뚫린 길이 있어서 길에 서서 멀리 바라보면 단아한 풍경이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내가 즐겨 걷는 논둑에는 앞방죽논들과 개자리논들 사이를 흐르는 개울이 가다말 앞에 있는 논을 지나 미산동 앞 송신소까지 논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이따금 키 큰 풀 사이로 개울이 나타나면 그 모습 또한 잔잔하여서 좋다.

모낸 지 55일된 벌판은 벼 포기들이 물결처럼 흔들리며 초록 수평선을 그려놓고 있다. 벼 포기들이 제법 튼실한 벼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고 논둑길이 휑하게 비어있다. 군데군데 경운기에 양수기와 호수가 실려 잘 묶여져 있다. 봄 내내 논에 물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퍼 올리던 양기수가 이젠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또다시 논에 물이 마르기 전까지는 경운기도 양수기도 제 할 일 다 하고 이제 취침시간이다. 다만 수문들이 수문장처럼 어린 벼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물을 내보내고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수문은 가뭄이 들거나 장마가 질 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가로운 논에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황새들이 먹이를 구하러 연초록의 벌판 위로 날아든다. 마치 하얀 적삼을 입고 논을 매는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농부들은 모를 내고 잘 자라고 있다고 해서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빈 논둑을 그냥 버려두지 않고 콩이며 들깨와 고추 등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곡식을 심고 가꾸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호조벌은 사람 냄새나는 평화로운 들인 것이다. 시흥의 밥은 이렇게 시흥사람들의 힘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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