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녀응원단이 남한에 처음 온 것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었다. 만경봉 92호를 타고 부산 다대포항에 모습을 드러낸 291명의 북한 미녀응원단은 도착부터 화제였다. 또 경기장마다 관중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녔다. 매 경기마다 다채로운 패션으로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무용과 율동, 구호, 합주 그리고 각종 응원도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아왔던 우리의 응원문화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TV 등 언론도 그들을 좇기에 바빴다. ‘남남북녀의 미모’를 놓고 인터넷 설전도 끊이지 않았다. 관중의 시선 또한 경기보다 응원단에 쏠려 ‘북녀 신드롬’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들은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더 관심을 끌었다. 규모는 303명으로 최대였고 김일성대학, 평양음악무용대학 등에서 선발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대회 중간 일부 단원들이 김정일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빗속에 방치돼 있다며 끌어안고 통곡하는 장면이 보도되고, 북측 기자들과 보수단체가 충돌하면서 응원이 정치색으로 변질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북한은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100명의 미녀응원단을 보냈다. 당시엔 대부분 여고생인 것이 특징이었다. 이들 역시 빼어난 외모와 개성적인 응원으로 곳곳에서 화제가 됐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도 예능 인재 양성기관인 금성학원 학생으로 응원단에 포함됐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리설주는 당시 16살이었던 것으로 추정됐으며, 관현악단 소속 가수로 응원단에 함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은 경기 응원뿐만 아니라 인천 문학구장 등에서 별도로 3차례 공연을 하기도 했다.
남한에 파견하는 미녀응원단은 외모와 능력 등을 고려, 북한의 철저한 심사를 통해 가려진다. 그리고 남한으로 떠나기 전에 정보당국에 서약을 해야 한다. 서약에는, ‘돌아와서는 남조선에서 보고들은 것을 일절 발설하지 않겠다’, ‘이를 어기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들이 다시 온다. 9년 만이다. 입막음 당한 젊은 그들, 남한을 보며 무얼 느끼고 돌아갈지 궁금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