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정착되고 있다. 내 손으로 가려 뽑은 도지사·시장·군수와 지방의원들이 내 고장에 알맞은 맞춤정책을 세워 주민들과 함께 이끌어가자는 것이 지방자치제도의 본래 취지다. 이에 어울리지 않는 정당공천제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초기의 어수룩한 과정을 지나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재연되는 구태가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예외 없이 공직사회에 떠도는 이른바 ‘살생부’ 등 인사 잡음으로 인한 분열 양상이다.
자세한 것은 조사결과 밝혀지겠지만 선거 후 인사 후유증으로 인해 공무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지난 6일 오전 3시쯤 안양시청 7급 공무원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보도(본보 7일자 1면)에 의하면 가족들은 “대기 발령됐다. 사무실에 내 컴퓨터도 전화기도 없다”는 하소연을 했다고 밝혀 최근 인사에 의한 상실감이 컸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고인의 동료에 따르면 ‘일 잘하기로 유명한 직원’이었는데 지난 1일자로 대기 발령 나 업무분장에서 배제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안양시 관계자는 “징계성 인사는 아니다. 시장이 바뀌면서 일부 부서 인사를 단행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라며 논란 진화에 나섰지만 안양시 공무원들은 큰 충격을 받고 참담한 분위기 속에서 분노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무원들은 시장의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인사발령을 단행한 것은 보복인사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시장 취임 전부터 살생부가 나돌았다는 주장도 들린다. 안양시와 마찬가지로 화성시 공직사회도 술렁거리고 있다. 업무로 마찰을 빚은 시지역개발사업소 과장에게 대기발령을 낸 것이다.
일부 공직자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원 준공식과 관련, 시장과 의견 충돌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에 대한 징계성 인사였다고 수군대고 있다. 소위 ‘살생부’의 존재 여부도 공직자들의 관심거리다. 전·현직 시장이나 부시장 등이 대결했던 지자체에서는 출처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살생부’설이 떠돈다. 선거에 개입한 공직자들이야 당연히 의법 조치돼야 하지만 ‘내편이 아닌 듯하다’고 해서 살생부에 올라간다면 공무원들은 눈치를 봐야할 것이고 소신 있는 업무처리를 할 수 없다.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탕평인사’가 지켜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