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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간헐적 희망

 

너구리가 순하게 지나간 자리에 마른장마가 불청객을 데리고 왔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며 초복도 오기 전에 수은주는 30도를 넘는다. 그늘에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불을 끼고 살자니 살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땀이 흘러 눈이 쓰리고 찬물만 들이켜는 바람에 입맛도 달아난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이 더위에 도로 위에서 땡볕과 아스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일하는 공사현장 인부들을 보면 덥다는 말이 쑥 들어간다. 저녁에는 물병에 찬물을 반쯤 채워 냉동실에 넣는다. 불볕더위를 이기라고 보내는 응원이다.

잠시 쉬는 참에 낯익은 풍경이 지나간다. 넓은 챙에 또 얇은 천을 커튼처럼 덧대 늘어뜨린, 아무리 봐도 여성용으로 보이는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쓴 도무지 얼굴을 분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손에 종이컵을 들로 지나간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이럴 때 소나기나 한바탕 쏟아지면 좋겠다고 하늘을 보며 불평조로 하는 말도 그들에겐 절실한 희망일 것이다. 그에 답이라도 하듯 모자에 드리운 천이 나풀거린다. 예전에는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햇볕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서 만든 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노점상을 하는 분들도 쓰는 남녀공용 모자로 자리 잡아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더위가 밀려오기 시작하면 피서지를 생각하게 마련인데 나는 언제나 연꽃이 먼저 떠오른다. 이슬방울을 어르는 연잎 위로 피어있는 연꽃을 보겠다고 첫 새벽에 떠나던 추억도 이제는 말 그대로 추억이 말았지만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나를 흔든다. 올해도 어느 새벽을 틈타 다녀오고 말겠다는 다짐을 한다. 하긴 그렇게 다짐을 하고도 그대로 흐지부지 사라지는 생각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봄이 오기도 전에 쑥을 뜯고 싶은 마음은 벌써 쑥떡을 열두 번도 더 해먹었고, 가을이면 문을 바르겠다며 책갈피에 넣었다가 나중에 책 정리하며 그대로 버려진 단풍잎이며, 모과청을 하고 싶은 간절함도 건너뛰고 겨울이면 재두루미를 보겠다고 주위에 쌍안경까지 부탁하고도 내년에는 꼭 가야지로 끝나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마음뿐인 그 부스러기들을 털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도 어지간히 답답한 사람이다.

스마트폰이 금쪽같은 잠시의 고요를 깬다. 최신형 스마트폰 공짜로 시작하는 결코 스마트하지 못한 카톡이 들어왔다. 전화를 든 김에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무슨 새소리에 산골물소리가 들린다. 주말이면 아들을 기다리던 작은 희망은 결국 나를 위해 접었지만 연휴나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게 된다. 들려오는 답은 언제나 똑같을지라도 목소리 한 번 들은 걸로 만족한다. 식탁에 같이 앉은 사람은 남편과 시어머니 세 사람뿐이다. 갓 결혼해서는 식구도 많은데다 같이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식전에 해장으로 시작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그 치레로 심신이 고단해 홀가분하게 살고 싶었다. 남편과 둘이 밥 한 끼 먹어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 머지않아 초복인데 삼계탕이라도 제대로 끓여야겠다. 가족의 건강은 간헐적일 수 없는 항구한 희망이기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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