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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여름스케치

 

마른장마라고 한다. 저수지는 텅 비어 있고 천수답 농사를 하는 곳은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애를 먹는다. 물이 졸아든 저수지에는 거처를 놓친 물고기들의 파닥거림이 눈에 띄곤 하더니 며칠 전 천둥 번개와 함께 요란스럽게 내린 비에 들판이 생기를 되찾았다.

키가 큰 해바라기와 참깨가 넘어가긴 했어도 호박꽃에는 벌의 윙윙대고 겨우 자라던 오이며 가지가 부쩍부쩍 자란다. 잘 보이지 않던 개구리도 보이고 달팽이도 제집을 지고 슬금슬금 이사를 다닌다.

참외밭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올해 처음으로 개똥참외를 심었는데 제법 실하게 달려서 참외깨나 수확하지 싶어 몇 개 따려고 했더니 참외는 없고 참외 열렸던 자리에 흙이 흩어져있다.

길옆에 밭이라서 그런지 간혹 손이 타는 곳이라 누가 또 이런 짓을 했을까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그렇지 주인은 아직 맛도 못 봤는데 너무하지 않은가 한두 번도 아니고 하면서 투덜대고 있는데 나무 밑에 참외 껍질이 있다. 잘 익은 참외를 따가지고 와서 갉아먹고 껍질만 남겨 놓았다.

갉아먹은 흔적으로 보아 제법 큰 동물인 것 같다. 우리는 범인을 너구리라고 단정했다. 며칠 전 고라니가 밭에서 도망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이빨 자국이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고라니는 아닌 것 같다.

수확시기에 든 참외만 골라 먹는가 하면 그것도 참외밭에서 먹는 것이 아니고 참외를 따가지고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 먹는 것하며 영락없이 너구리인 것 같다. 그 녀석 후각이 발달한 모양이다. 아직 설익은 것은 그대로 두고 익은 것만 골라 그것도 몇 개나 해치웠다. 참 예의가 없는 녀석이다.

약은 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헛걸음하고 다음날 또 가봤다. 또 몇 개 집어갔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설익은 참외를 내가 땄다. 먹든 못 먹든 따야겠다는 생각에 웬만큼 익은 것을 따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옆에 노란 참외가 있는데 그건 건드리고 않고 멜론 향이 나는 개똥참외만 습격했다.

어떡해 그 녀석을 혼내줄까 궁리를 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렇다고 밭에 울타리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도 없고... 멧돼지의 습격으로 농작물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소연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들판에 나서보면 야생동물이 부쩍 많아졌다. 산에서 살아야 할 녀석들이 인가로 내려와 피해를 주기도 하고 로드킬로 목숨을 잃는 숫자도 급격히 증가했다

상위 포식자가 없어 개체 수는 늘어 가는데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다 보니 먹거리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인가로 내려오고 그러면서 목숨을 잃는 것이다.

너구리를 범인으로 몰며 잃어버린 개똥참외를 아쉬워하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전문 농업인이 아녀서 조금 나눠 먹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만약 참외농사를 생업으로 했다면 무척 속상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곡식에 뒤질세라 풀들의 아우성도 만만찮다. 뽑고 돌아서면 또 있고 흙만 있으면 풀이 먼저 주인 행세를 한다. 농사는 하늘 농사가 제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툭툭 털며 구름의 행방을 살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자작나무에게 묻는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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