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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책 읽는 사람의 멸종

 

퇴근길에 서점을 들렸다. 평소 좋아하는 소설을 한 권 집어 들었다. 몇 장이라도 읽고 싶은 생각에 전철에서 책을 펼쳤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승객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다. 그 순간 스스로가 마치 구시대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전철에서 책 읽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생긴 것이 아닐까하는 웃지 못 할 망상조차 들었다. 스마트폰 보급 전에는 드물게나마 보였던 책 읽는 사람은 멸종되어 버렸다. 정신이 산만해져 이내 책장을 덮어야했다.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가파르게 늘어가는 반면에 독서율은 1년마다 1%씩 떨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1994년 86%이던 독서율(1년에 한권 이상 읽는 사람의 비율)은 2011년에는 66%로 떨어졌다. 2013년에는 책사는 돈(2만570원)이 빵 사는 돈(2만979원)이나 신발 구입비(2만2784원)보다 적어졌다.

책이 사유와 감동의 공간이라면 스마트폰은 스피드와 유희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감동을 맛보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막히면 바로 다른 것으로 옮긴다. 유희가 목적인양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10년 후쯤은 어떨까? 인간은 더 이상 사유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사유능력을 갖게 된 로봇이 사유능력을 상실한 인간을 위협할 수도 있다. 공상과학영화가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샤를단치는 ‘왜 책을 읽는가’에서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는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으되 자만하지 않는 삶, 최소한의 긍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라고 갈파했다.

책 읽는 사람의 멸종은 책의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다. ‘책의 멸종’은 생명체의 멸종을 다룬 ‘침묵의 봄’ 만큼 참담한 일일 것이다. ‘코스모스’를 읽으며 우주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작고 짧은 존재인지 깨우침으로써 겸손함을 배우고, ‘총균쇠’를 통해 지리적 고립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보며 문명 성쇠의 비밀을 엿보며, ‘관부연락선’에서 좌우 이데올로기로부터 고통 받는 중도적 지식인을 보며 이데올로기의 허망함을 깨우치고, ‘태백산맥’을 읽으며 우리 역사의 울퉁불퉁한 산맥을 타보는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당장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이미 중독 상태에 빠져있다. 도로에 차가 넘쳐나자 ‘차 없는 거리’나 ‘차 없는 날’을 정했듯이 스마트폰 없는 시간이나 날을 정하자. 그러나 스마트폰의 치명적인 유혹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보다 적은 수면시간이나 열악한 교통 여건에서 비롯한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줄어야하는 시간은 따로 있다. 바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과 저녁에 술 마시는 시간이다. 일을 더 스마트하게 하면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인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스마트해지려면 스마트폰의 교체 보다는 생각과 문화의 변화가 우선이다. 또 술을 반만 줄여도 적지 않은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낸 시간 중에 책 읽는 시간을 끼어 넣자.

천만관객이 드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게 우리사회다. 그 무서운 쏠림이 책으로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회지도자급 인사나 유명연예인이 앞장서면 그런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

어느 날 이런 9시뉴스가 등장하면 좋겠다. “시청자 여러분! 천만관객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천만독서인은 들어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일 년에 오십 권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 천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일주일에 한권 이상을 읽어야 가능한 숫자입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독서후진국이던 우리나라가 불과 몇 년 만에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 이후로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든 겁니다. 정부는 과도한 독서 열기를 식히기 위해 한 사람이 1년에 구입할 수 있는 책의 권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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