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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나무와 고부의 공방전

 

비오고 난 후의 아침이 참으로 싱그럽다. 창문을 열고 길길이 솟은 나무들을 보며 심호흡하는 것이 내가 사는 일과 중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여름을 지나는 나무들은 짙을 대로 짙은 초록빛을 띄우고 있다. 조그만 자연부락이지만 여기저기 공장건물이 세워지고 이젠 자연부락이라고 할 수 없는 마을에서 마치 산 속에든 듯이 있는 우리집 풍경을 나는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일이나 숲속의 나무들이 자라는 과정에 우여곡절은 자주 생겨나기 마련이다.

요즘 시어머니와 나는 집 주변에 자라는 나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시어머니는 나무들을 베어야한다고 틈이 날 때마다 말씀을 하신다. 그 이유는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서 그늘 때문에 곡식이 되질 않으며, 모기가 너무 많아서 문을 열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무가 높이 무성하게 자라서 텃밭에 심은 곡식들이 그늘 때문에 잘 자라지 않으니 그 부분에서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게다가 밭에 나가 상추나 고추, 오이를 따다가 보면 모기를 수없이 물리는 일이 다반사며 집안에도 문만 열면 모기가 몰려들어서 모기와의 전쟁을 치러야한다. 하지만 나는 나무가 주는 장점이 더 크니 그런 것쯤 감수해야한다고 시어머니께 의견을 제시한다.

우선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건강에 좋은 것이며, 마을 앞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먼지가 몹시 심해도 그 먼지들을 나무가 막아주고, 주변에 들어선 공장에서 나는 연기며 먼지들을 이 나무들이 막아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가 품어내는 피톤치드는 돈을 주고도 못사는 좋은 공기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어머니도 건강하신 거라고 열변을 토하지만, 햇빛 좋은 마당에서 야채를 가꾸고 빨래줄에 빨래를 뽀송뽀송 말리는 일이 더 좋으신 우리집 시어머니는 아무리 나무가 있어서 좋은 장점을 이야기해도 햇볕 쨍쨍한 집이 좋으신 거다.

이렇게 좋은 나무들로 고부사이 엇갈린 의견을 가지고 있으니 이걸 어쩌나, 하며 마당 텃밭의 나무들을 둘러본다. 이십여년 전 초가집을 헐고 새로 집을 지은 후 담장 대신 마당 끝에서 텃밭 주변을 돌아 나무를 심었다. 텃밭 주변으로 단풍나무, 은행나무, 산벚나무, 사철나무, 박태기나무, 매화나무, 매실나무, 모과나무, 밤나무, 그리고 텃밭과 연결된 마당 끝으로는 벚꽃, 자목련, 백목련, 명자꽃나무, 라일락, 앵두나무 등, 내가 구할 수 있는 나무라고 생긴 나무는 다 심었다. 그 때 심은 한 뼘 길이의 묘목들이 이제는 특성대로 자라 서로 햇빛을 내주고 보듬으며 몸을 비틀며 솟구치며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공존하며 자연의 법칙에 순종하면 살아가는 걸 보게 된다.

나무들은 몇 해를 두고 전지를 하지 않아서 마치 야생의 어느 남녘의 숲을 연상하게 한다. 나무의 기운들이 집안으로 몰려오듯 살갗으로 부딪치는 느낌이 좋아서 심호흡하면 누가 뭐래도 나는 숲의 중심에 선 숲의 사람인 것이다.

오늘도 시어머니는 또 한 말씀하신다. “나무그늘 때문에 우중충한데 나무를 베어버리지 그러냐” “어머니, 나무들이 공해를 막고 섰으니 얼마나 좋아요.” 고부간에 공방전이 또 시작인 것이다.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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