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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상처 딛고 그냥 앞만 보고 뛰겠다"

귀순가수 김용씨, 심경고백하며 재기다짐

"눈앞에 캄캄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구요.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에게 미안했고, 죄스러웠습니다. 이제 앞만 보고 그냥 뛰어야죠. 어둠 속에서 낙이 오니까요."
귀순가수 김용 씨가 17일 오전 방송된 SBS TV 프로그램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해 이혼의 아픔과 재기의 각오를 들려줬다. 1991년 귀순했던 김씨는 결혼 5년만인 지난 7월 합의이혼한 뒤 현재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김씨는 극비리에 이혼하게 된 데 대해 "자랑거리도 아니어서 숨겨왔으나 어떻게 알려지게 됐다"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결혼 5년 동안 아내와 내가 서로의 거리를 좁혀 보려 했으나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남과 북 만큼이나 건너기 힘든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귀순해 `아, 평양아!'를 발표하며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외식업계에도 뛰어들어 전국에 70여개의 체인점을 두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 톈진의 국영호텔 경영권을 인수해 활동영역을 국제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이같은 사업의욕은 뜻밖에도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여러 쐐기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지난해 불어닥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유독 부부싸움이 잦아져 결국 이혼도장을 찍어야 했다.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스를 계기로 만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 사스 전염을 우려한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마스크를 쓰고서 중국을 오갔다.
"사업준비단계인 데다 140여명의 직원이 중국에 있는 마당에 그냥 손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톈진에 다녀 올 때마다 전염 우려 때문에 40일간은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따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내와 나는 더욱 극과 극으로 달렸지요. 그에 앞서 화장품 수입사업을 하던 아내를 지난해 여름 다단계사업에 끌어들여 올해 초 결국 거액의 빚만 안겨준 것도 큰 요인이 됐구요."
이혼에 이른 더 근원적인 이유는 두 사람 사이의 성격과 관점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김씨와 아내는 성장배경이 달라서인지 매사에서 부딪치기 일쑤였고, 그러면 그럴수록 같음보다 다름만 확인하며 섭섭함 속에 돌아서곤 했다. 관계가 최악에 달할 무렵에는 `화려한 생활을 해온 공인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김씨였다.
김씨는 검소한 생활에 익숙한 데다 가부장적 사고가 비교적 강했다. 반면 아내는 격식과 예의를 존중하면서도 자상한 남편을 원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명품을 사오면 "그 돈이면 양말을 몇 켤레 사고, 냉면이 또 몇 그릇인데…"라며 은근히 면박을 주었고, 나중에 별 생각없이 귀순후배에게 그것을 주었다가 두고두고 원망을 들어야 했다. 웨딩드레스 입고 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어했던 게 아내였다면, 드레스 입히는 것은 고사하고 TV에서 결혼식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슬쩍슬쩍 돌려버린 게 김씨였다.
"아내와 나는 정서가 달랐어요. 북과 남 만큼이나 멀었다는 얘기입니다. 아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북의 촌티를 벗겨보려고 명품을 사오곤 했는데, 나는 아껴 쓰자는 게 먼저였어요. 서로 힘들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쪽의 보통 남편들처럼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미안해집니다."
이런 김씨였지만 재작년에 평양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 왔을 때는 사뭇 다른 제안을 내놓아 아내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공연장에 함께 구경가기에 앞서 "머리고 옷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꾸미라"고 그가 부탁하자 아내는 '이 양반이 뭐를 잘못 드셨나?' 하면서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들 부부는 공연장 앞열에 나란히 앉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꾸민 아내는 관람 시간 내내 행복해 했다. 하얀 옷으로 성장한 이들 부부는 당연히 눈에 띄었고, 마침내 이들을 알아본 공연단의 요청으로 아내는 무대에서 교향악단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김씨는 이날이 결혼생활 5년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집에서는 늘 외로웠어요. 차라리 아내가 귀순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요. 항상 외로움을 탔으나 아내는 그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했어요. 둘이 있으면 오히려 더 적적해졌구요."
자신이 마련한 귀숙자 숙소에서 이혼 후 홀로 살고 있는 김씨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하나 가득 안고 산다. 아내가 아들과 같이 사는 아파트는 그의 숙소에서 빤히 건너다 보여서 외쳐 부르면 금방 들릴 듯하지만 그는 그 가족 곁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다섯 살짜리 아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지갑에 아들의 사진을 넣고 다니고 방안에 아들이 가지고 놀던 곰인형을 두고 있는 그이지만 지호지간에서 막상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사업으로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놀이공원 한번 데리고 가지 못한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우선 미안해서라도 아내의 집에 못 갑니다. 아들에게 무슨 말부터 할까 싶으면 더욱 발걸음이 안 떨어져요. 세 살 때부터 '사나이는 강해야 한다'고 가르쳐서인지 아빠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그 녀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리울 때면 지갑 속의 아들 사진을 보고 `잘 있지' 하고 속삭여보곤 합니다. 죽을 때까지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 해요."
김씨는 `사람은 전심전력할 때 단순해진다'며 요즘 사업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조금 등한시했던 음식점 사업에 더 관심을 기울여 70여개 점포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그리고 오는 20일에는 톈진에 있는 호텔의 본격운영에 들어갈 예정인데, 두 동짜리 이 호텔은 한국인 전용과 외국인 전용으로 나눠 운영하게 된다. 그래서 멀리서나마 아빠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예전에 약속했던 대로 아들이 10살이 되면 브라질에서 축구선수로 입단하는 모습도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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