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가까운 시간 역 근처에서 택시를 탔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음에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가 투덜댄다. 우회전도 안 되는데 여기서 차를 타면 어떡하느냐고. 바로 옆길로 가면 되는데 우회전이 왜 안 되느냐고 반문하자 기사는 차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잠깐 기다리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차에서 내렸다. 바로 뒤에 오는 개인택시를 세우니 연세가 지긋한 어른이 창문을 열고 앞차에서 왜 내렸느냐고 물어 사실을 말하니 저런, 하면서 금방이라도 앞차를 꾸중할 기세로 차를 움직이더니 이내 도망치듯 사라진다. 다시 뒤에 오는 차를 세우니 아예 설 기미도 없이 가버린다.
영문을 몰라 주춤거리다 다음 차를 잡아 무조건 탔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승차거부 당한 이유를 묻자 정말이지 기막힌 대답을 들었다.
밤 12시가 넘으면 할증요금을 받을 수 있는데 어정쩡한 시간이라 거부를 했을 것이고 시외로 가는 거면 요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데 같은 지역이고 자정 무렵엔 마지막 전철이 들어오고 버스도 끊기는 시간이라 택시보다 승객이 많다 보니 거부했을 거라 했다.
승차 거부한 차량의 넘버를 찍어놨는데 신고하고 싶다고 하자 단순히 거절한 것만으로는 안 되고 차에 탔는데 기사가 내리라고 했을 때 승차거부가 되는 거란다.
그게 사실이라면 앞의 기사는 교묘한 방법으로 승차거부를 한 것이다. 본인이 승객을 내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피해가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요금을 올릴 때마다 서비스를 강조하고 합승, 승차거부 등 승객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개선하겠다고 외치지만 실상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쉽게 개선되지가 않는다. 서민들의 발인 버스도 마찬가지다.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급정거를 하는가 하면 도로 복판에 버스를 세우면 승객이 쫓아가 차를 타는 경우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 목적지 안내방송을 하지 않는 버스를 만나면 지나치는 정류장마다 밖을 내다봐야 하거나 안내도를 보면서 지나가는 정류장을 세어야 할 때는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다. 작은 배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됨을 그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대부분 기사들은 친절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운전 중에는 절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운전석 옆면에 붙어있는 것이며 버스 안의 청결 등 여러모로 대중교통의 서비스가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질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승객도 승객으로서의 예의와 도리를 갖추는 우선되어야겠지만 승객과의 약속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부분은 버스를 이용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택시를 이용하지만 이번 같은 난감한 경우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택시기사 분의 설명을 듣고서야 승차 거부할 수도 있겠다는 기사의 입장과 승객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심야할증 요금이 될 만큼의 요금을 얹어 지불했다. 거절했지만 감사의 뜻이라며 전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어려운 현실에 힘이 됨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