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원하는 이 시대는 진정 힐링(healing)의 시대인가? 그렇다. 감동의 눈물이 눈시울에 고여선 감정의 정화인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염원하고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대중들은 진정 치유를 원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에 빠져있다. 하나는 교황의 방문으로 이 시대 음지(陰地)에서 가엾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사가 주어졌다.
진실한 마음이요 소박한 바람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화 ‘명량’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애민(愛民)정신’은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인 조선을 구한 위대한 정신이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싱크홀처럼 주저앉은 불안한 이 시대에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랑’이었다. 세월호처럼 뒤집힌 배를 내동댕이치고 제 목숨 하나 구걸하듯이 도망치는 불의한 선장과 선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무책임의 극치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보통사람들은 치유하기 힘든 상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 현실.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은 나라를 구한 ‘사랑’의 실천적 가치였다. 교황의 방문이 우리의 아픈 마음을 다독여준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더욱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내버려야 한다. 교황이 탄 소형자동차. 그 자동차를 생산한 회사는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회사가 생산하지 않았던가? 돈벌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마케팅차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황께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재벌회사가 어떻게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하는가를 묵시적으로 보여주고 계시지 않는가를 곰곰이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배금주의에 사로잡힌 한, 진정성 있는 가치는 생산되지 않는다. 차라리 정의를 지키다가 핍박을 받으며 생을 살아가는 것이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여 부유하고 윤택한 삶을 사는 것보다 값지다. 왜냐하면 영혼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는 위대한 가치다. 사랑을 토대로 해야 정의가 확립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의(不義)이다. 그 사랑의 실천은 귀한 목숨도 내던지는 헌신이요 희생이다.
하나뿐인 목숨을, 정의를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간단하게 내던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혼이 가난한 사람만이 그 길을 갈 수 있다. 사랑을 실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우리는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지극한 이기주의가 팽창하는 사회에, 정의가 실종되는 사회 곳곳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지위(地位)고하(高下)를 막론하고 판을 치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진정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돈과 물질로 모든 것을 매수하려는 사회지만 그렇더라도 영원한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자. 구출하고 구원하자. 이 시대고(苦)를 넘어가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자.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경기예총 2012년 빛낸 예술인상 수상 ▲한광여중 국어교사 ▲전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시집-‘카프카의 슬픔’(시문학사·1992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