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난 신생아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빠 닮았네!” 또는 “엄마 닮았네!”라는 말을 한다. 뭔가 엄마를 닮은 것 같은데, 묘하게 아빠의 골격 또는 생김을 많이 닮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같은 부모가 아이를 여러 명 낳았을 경우에는 그 자녀 중 아빠를 많이 닮은 사람, 엄마를 더 많이 닮은 사람 또는 아빠와 엄마를 초월하여 더 외모가 출중하거나, 더 많이 부족한 자녀인 경우도 볼 수 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받는다. 그런데 유전자는 한 쌍으로 존재해야 안정하다. 그래서 각 유전자마다 한 쌍이 있는데,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받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에게서 받는다. 이를 유전학에서 대립유전자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각 형질을 발현하는 하나하나의 유전자 자리(loci)에 대해서는 이형 접합이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 속 거의 모든 유전자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렇게 침묵하던 유전자가 단백질 생산에 참여하려고 하면, 우선 활성화되어야 한다. 유전자의 활동성, 즉 유전자가 밝게 빛나는 정도를 가리켜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이라고 한다.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과정이 곧 유전자 조절이다. 이러한 조절인자의 대표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인데, 히스톤은 보통 유전자가 활성화 되어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부분에서는 느슨하게 결합하고, DNA가 비활성화될 부분에는 단단하게 결합한다. 이 때 히슨톤이 DNA와 붙는 강도는 후성유전적 과정들과 상관관계가 있다. 후성유전적 과정들에서 히스톤은 생화학적으로 다양하게 변형되는데, 메틸화도 그 중 한 방식이다.
후성유전연구는 암(cancer) 연구에서 많이 진전이 있었다. 암세포에서는 많은 유전자가 정상적인 메틸 부착물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을 탈메틸화(demethylation)라 한다. 이렇게 정상적일 메틸 부착물을 잃어버린 유전자들은 유전자의 정상적 조절양식을 받지 않고, 세포가 마구잡이 증식을 해버린다. 세포의 메틸화 감소는 초기 단계의 암을 예측하는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DNA에 히스톤이 결합하지 않는 현상이 있는데, 그러면 문제의 유전자가 더 많이 활성화 된다. 연구자들은 ‘최초에 암세포를 암으로 만드는 인자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해왔는데 그 답으로 어느 한 세포에 모종의 유전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유전변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고, 세포집단에서 더 많은 변이가 쌓여서 암이 유전적 이질성을 갖게 되면서 정상세포와 더 많이 증식하려고 경쟁적으로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갈수로 해로워진다. 암은 발생부터 전이까지 유전적 변형의 문제인 셈이다.
후성유전적 시각에서 발암물질이란 후성유전적 조절을 바꿔놓는 무언가다. 후성유전적 과정은 유전적 과정과는 달리 가역적이어, 탈메틸화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 후성유전학적 요인이 암의 일차적 원인이라는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증거는 백혈병 연구에서 왔다. 백혈병 세포들은 홀배수체에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이 세포들에 후성유전적 개입을 함으로써 다시 정상화 시킬 수 있었다. 백혈병 세포가 정상적인 백혈구처럼 행동하도록 한다. 세포가 정상화되더라도 백혈병의 원인으로 짐작되었던 염색체 배열상의 변이는 돌려지지 않지만, 상위의 세포 조절은 정상적인 백혈구처럼 행동하게 하였다.
이처럼 면역학적 과학으로 볼 때, 암이 발생하는 까닭은 정상적인 세포간 상호작용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세포간 상호작용이 망가지면 세포들의 내부 환경이 변화하고, 그래서 메틸화가 억제되는 등의 후성유전적 변화들이 한꺼번에 벌어진다. 지구 온난화 등에 대비한 가뭄, 스트레스, 홍수 등에 대한 식물 면역학적 변화에 대비한 후성유전자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슈퍼 식물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질 수 있다. 후성유전의 가치는 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는 흐름이 아니라 그 흐름의 원인을 찾고 방향을 돌릴 수 있는 가역적 기작이므로, 앞으로 꾸준히 연구해야할 가치가 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