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예년보다 빨리온 탓에 햅쌀구경이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 가정에서는 도정날짜가 추석 무렵인 지난해 쌀로 송편을 빚거나 차례를 지내고 밥을 지어 먹었다. 해서 갓 수확한 햅쌀로 감사의 예를 올리는 추석의 의미가 빛을 바래긴 했어도 유난히 밝았다는 ‘슈퍼문’을 보며 그나마 위안을 삼은 것이 다행이다.
이렇듯 한국인에게 쌀은 주식(主食) 이상의 존재다. 한국인의 삶 또한 쌀과 밥을 떠나 생각하기 어렵다. 일상적인 인사말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다. ‘밥 먹었느냐’, ‘식사 하셨습니까’. 또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흉이 아니라 건강함을 상징하던 시절도 있었다. ‘밥심에 산다’ ‘밥이 보약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보니 예부터 쌀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 때문에 일미칠근(日米七斤)이란 말도 생겨났다. 쌀 한 톨에 일곱 근의 땀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쌀이 소중하니 한 톨도 허투루 여기지 말라는 경구다. 하지만 쌀도 변하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먹거리의 변화로 쌀 소비가 30여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도 1980년 132.4㎏에서 작년 67.2㎏에 불과하다. 국내 한 도자기업체에 따르면 요즘 밥공기 용량은 평균 290㎖로 1940년대의 680㎖에 비해 절반도 안된다고 한다. 그나마 쌀시장의 문호가 열려 설자리마저 더욱 잃어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우리의 주식인 쌀은 흔히 안남미로 불리는 인디카와,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두 종이다. 인디카는 길고 끈기가 없는 장립종이고, 자포니카는 짧고 끈기가 있는 중·단립종이다. 세계 생산·소비량의 90%가 인디카다.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중국 동북3성,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만 재배된다.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는 1만년 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원은 중국 윈난, 인도 북부 아삼, 동남아 등 설이 분분하다. 한반도에는 약 4000년 전 유입됐다.
이런 쌀이 진화를 거듭해 최근 키 크는 쌀, 그리고 다이어트 쌀. 여기에다가 위염의 주범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없애주거나, 음주 충동을 줄여주는 알코올 중독 치료용 쌀까지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내년 쌀 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 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속도를 낸 결과 라는 것이다. 수확의 계절, 수입쌀도 물리치면서 주식이 건강식으로 바뀌는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보여 내심 뿌듯하고 든든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