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황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가짜 돈’을 만들어내려는 유혹에 빠지게 한다. 덩달아 화폐를 위조하려는 기술도 진화하고 이를 가려낼 수 있는 감식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위조지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슈퍼노트(supernote)다. 진짜 화폐와 다름없을 정도로 극히 정밀하게 만들어진 미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지칭하는 말이다. 슈퍼달러(superdollar)라고도 하며, 1989년 필리핀 마닐라의 은행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진짜 화폐와 똑같은 용지를 사용하는가 하면 특히 지폐 안에 숨겨진 비밀 코드까지 구현하고 있으며 일련번호 마저 각각 다를 정도의 초정밀 수준에 이르러 전문가들조차 감별이 어렵다.
따라서 적외선 감별기나 특수확대경을 사용해야만 감식할 수 있다. 때문에 개인이나 범죄집단의 소행이 아니라 국가가 개입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북한이 그 출처로 의심받고 있다.
슈퍼노트는 2008년 국내 부산에서도 9천900여장이 발견된 적이 있다. 미국은 1996년 슈퍼노트로 인한 피해가 늘자 68년만에 100달러짜리 화폐의 도안을 바꾸기도 했다.
국제적 위조지폐사건은 간혹 국가가 개입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스의 정보선전장관 히믈러가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미국의 달러, 영국의 파운드를 위조하여 유통시킨 사건이 있었다. 위폐를 주로 영국의 식민지에서 사용토록 한 ‘안드레아스계획’이 그것인데 당시 많은 혼란을 야기시켰다. 최근에 와선 달러 이외에 독일의 마르크, 영국의 파운드, 프랑스의 프랑 등 주로 국제유통빈도가 높은 지폐들의 위조도 많다. 이 또한 국제적 위조단에 의해 저질러지며 근래엔 화폐 이외에 채권 여행자수표의 위조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유명한 위조지폐 사건은 1946년 광복 직후에 일어난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 사건이다. 남조선노동당이 당시 한국은행권의 지폐 원판을 도용하여 대량으로 위조지폐를 발행, 경제를 혼란케 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또 지난 2013년에는 2005년 부터 8년간 5천원 구권 위조지폐 약 5만장을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킨 위조범이 붙잡히기도 했다.
어제 역대 최대 규모의 5만원권 위조지폐가 서울의 한 새마을 금고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모두 1천340장, 금액으로는 6천700만원상당이다. 한국판 슈퍼노트의 출현이 아닌지 걱정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