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점점 높아가고 조석으로 싸늘한 기운이 드는 걸 보니 이제 가을이 분명하다.
화창한 아침 햇살이 자꾸 밖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문을 나서니 나도 모르게 안현동 가다말 마을 앞에 있는 호조벌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호조벌 입구에서 넓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니. ‘아, 진정 이제 가을이구나.’ 하는 감동이 먼저 온다.
들판을 가로지른 농로에는 듬성듬성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을 들판길을 걷는다. 안현동에서 미산동, 포동까지 이어진 농로는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들판입구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달작지근하게 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초록빛으로 빳빳이 서있던 벼들은 제법 누른빛이 돌기 시작하고 이삭이 갸웃해지기 시작한다.
미산동 앞에서 포동 송신소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농로는 호조벌 사람들의 산책 코스다. 벌판 주변으로 매화동, 안현동, 미산동, 포동, 연성동의 아파트들이 우뚝우뚝 솟아있어서 도시 속의 농촌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농로에 아침저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잔잔하게 출렁이는 벌판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직장이 가까운 사람들은 차를 이용하지 않고 이 농로를 걸어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호조벌은 계절마다 풍경이 새롭다. 미산동 쪽 농로에는 수로와 길이 나란히 달리고 있어서 길의 곡선과 수로가 주는 냇가 느낌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한다. 또한 둑에는 고추, 들깨, 참깨, 콩들이며 배추와 무를 가꾸는 농민들의 알뜰한 마음을 볼 수가 있어서 좋다. 모를 내고부터 하얀 황새를 볼 수 있는데 모이를 쪼고 있는 황새들의 몸짓은 마치 하얀 옷을 입은 농부가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도 한다.
차를 몰고 가거나 산책을 하면서 인기척을 내면 여기저기서 하얗게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초록빛 들판 위로 혹은 초록빛 들판 사이로 날아가는 황새를 보기 위해 차를 세우기도 한다. 이는 근방에서 만나기 힘든 풍경 중에 하나이다.
황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따라 길 굽이를 돌아서면 요즘에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수로를 따라 봄에 심어놓은 수수가 이삭을 탐스럽게 이고 있다. 한길이 넘는 수숫대가 바람이 불어오면 무거운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우수수 몰려갔다 몰려오는 모습이 이채롭다.
가뭄이 들면 냇물처럼 흐르는 물길이 있고 그 수로를 따라 수숫대들의 행렬이 산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날씨가 쌀랑해지면서 호조벌 위는 요즘 하얀 양떼구름으로 장관을 이룬다. 무한히 펼쳐지는 양떼구름의 변하는 모습은 여름과 가을의 중간지점을 화려한 율동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누런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릴 호조벌이다. 호조벌은 일년 사계를 두고 살펴보아도 언제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향이란 이미지를 안겨주어서 이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점점 짙어오는 벼 익는 구수한 내음과 수숫대가 흔들릴 적마다 번져오는 수숫내가 어울어진 가을 호조벌, 벼의 바다를 산책하는 이들은 특별한 정서를 느끼고 마음을 정화시키게 된다.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