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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齒)가 처음부터 오복(五福)에 든 것은 아니다. 오복이 문헌상에 처음 언급된 것은 중국고전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이다. 여기서는 인생(人生)의 바람직한 조건인 다섯 가지의 복을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라 했다. 유호덕은 지금의 ‘보람있는 봉사’를, 고종명은 ‘깨끗한 죽음’을 의미한다. 또 그후 청대(靑代)에 나온 통속편(通俗編)에는 수 부 귀(貴) 강녕 자손중다(·(子孫衆多)로 약간 바뀐다. 이처럼 옛 문헌을 보더라도 치아가 좋은 것을 오복 중 하나로 언급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이를 오복으로 치는 것은 아마도 이가 좋아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듯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이를 옛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했을까. 주로 나무를 사용해 이를 닦았다. 그중 버드나무가지를 갈라 이쑤시개 형태로 가장 많이 썼다고 하는데 우리가 양치질이라 하는 것도 버드나무가지 즉 ‘양지(楊枝)’질에서 유래됐다. 지금도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천여년경 쓰던 ‘나뭇가지 모양의 양치도구’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치아관리에 이런 칫솔질보다 치약을 먼저 사용했다. 그 기원은 고대 이집트시대로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황소의 발굽을 태운재에 계란 껍질, 굴 껍질 및 결정이 고운 연마제를 몰약(수액)과 함께 혼합 한후 손으로 직접 이를 문질러 사용했다.

치약이 본격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그때도 형태는 가루였다.그러나 벽돌 가루와 질그릇 가루와 같은 강력한 연마제 성분들로 인해 오히려 이를 상하게 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이 튜브에 젤 형태의 치약을 넣는 방식은 1892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일반인들의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889년 ‘치분치약’이 처음 판매된 우리나라는 당시만 해도 대부분 서민층은 소금을 사용했다. 따라서 치약은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는데 1954년 튜브형 치약이 국내 최초로 생산되면서 대중의 필수품이 됐다.

최근 국내 허가 치약의 3분의 2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논란이 거세다. 암 발병과 각종 호르몬 분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파라벤’과 ‘트리클로산’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식약처가 기준치초과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소용이 없다. 국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서둘러 진실을 규명하기 바란다.

/정준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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