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문화를 전공하던 일본 유학의 시대, 고달픈 생활 속에 위안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역 앞에 있는 밥집을 겸한 작은 이자카야에서 일본인 주인장 내외와 회포를 푸는 일이었다. 늘 반갑게 맞이해 주어 단골이 되었다. 당시 60대 중반의 노부부는 늘 민요 ‘아리랑’을 불러주었다. 어릴 때 동네 한국인들이 가르쳐 주었다고 얘기했다.
그들의 향수는 한국인들의 일제 강점기 시대 고난의 대장정과 역경 속에 살아온 디아스포라의 모습이 같이 겹치면서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불러주는 ‘아리랑’은 너무나 고왔고 아름다웠다. 그만큼 ‘아리랑’은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한국을 대표하는 곡이다. ‘아리랑’은 한국의 특유의 정서인 ‘한‘(恨)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곡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제일동포 3세로, 현재 한국인 밀집지역인 가와사키에 살고 있는 송부자(宋富子)씨는 자신의 이야기인 일인극 ‘재일삼대사’(在日三代史)를 꾸준하게 공연을 하고 있다. 그는 중학교 재학중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알고 나서, 이를 안 주변 일본인들에 의해 이지메를 당하면서 몇 번의 자살을 시도했다.
그후 어느 때부터 더 강한 ‘한국인’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면서,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다. 그는 신오쿠보에 자리한 시민들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는 ‘고려박물관’의 초대관장(현재 명예관장)이었다.
그가 불러주는 ‘아리랑’은 제일동포 3세로 살아온 타국에서의 고된 인생의 가슴 속에서 표출하는 절규이자 타국에서 굳세게 살아가는 그의 인생 자화상이어서 늘 감동을 느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알려진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 감독·주연의 영화 ‘아리랑’을 통해서 크게 대중들에게 전파되었고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흩어져 살았던 이들이 ‘아리랑’을 부르면서 눈시울 붉히기도 하면서 모진 세월을 대변하는 우리의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아리랑’은 대표적인 문화 스토리텔링이자 한국인의 정서를 알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한 대표성으로 ‘아리랑’이 지난 2012년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러한 한국 문화 콘텐츠의 자산인, ‘아리랑’이 공연으로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었고, 지역에서의 저변 확대를 계속되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아리랑’은 체념으로서의 ‘한’(恨)의 이미지를 탈피해 외국인들도 같이 흥을 나눌 수 있는 문화 콘텐츠여야만이 공연으로서의 생명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아리랑’은 슬프기도 하지만 기쁜 노래이다. ‘진도 아리랑’은 아련하고 정서적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밀양 아리랑’, ‘단천 아리랑’, ‘서도 아리랑’은 곡 자체가 흥겹다. ‘정선 아리랑’은, 서서히 흥이 나서 신이 나지만, 애잔해서 가슴을 저미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의 ’청주 아리랑‘을 비롯하여 러시아, 일본 등등 세계 각지의 한국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집대성하여 세계인들이 같이 공감대를 함께 할 수 있는 ’아리랑‘이 공연되어야 한국인들에게는 자부심을,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노래로서 진정한 가치로 오래 오래 각인시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 공연으로서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벨기에 등 해외 아트마켓이나 저명 공연예술축제 코디네이터 혹은 공연작품을 가지고 제작자로서 참가하면서 이러한 한국 대표적인 ‘아리랑’의 소재는 외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오래 동안 경기도립국악단에서 준비해서 12월 경기도문화의전당 아늑한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음악극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는, 그러한 한국 문화 콘텐츠 대표성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다. 민요 ‘아리랑’ 뿐만 아니라 소리의 다양성을 위해, 경기민요, 서도민요, 그리고 남도민요의 결합을 통해, 한국인들이 느끼는 정서의 공감대는 물론이지만, 외국인들도 함께 한국의 정서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음악극으로서, 오래되어 공연되어질 수 있는 경기도의 대표 문화 콘텐츠로 만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