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초입부터 눈이 잦다. 곳곳에 빙판길이 생기고 행인들의 걸음걸이가 조심스럽다. 큰길은 제설작업으로 교통상황이 원만한 데 비해 골목이나 음지는 눈이 쌓이고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얼음판이다.
적당히 비탈진 언덕을 조심스레 내려오던 노인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일어나지를 못해 쩔쩔매고 있다.
아마도 골절상을 입은 모양이다. 팔십에 가까운 어르신의 당부를 잊을 수가 없다. 여자 나이 오십이 넘으면 이젠 자신을 섬기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은 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섬기고 자식들을 위해 생을 바쳤으면 이제는 그 반 만큼이라도 자신을 돌보라 했다.
자식들 입다 내놓은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구멍 뚫린 양말 기워 신고 손발 다 닳도록 뒷바라지하고 훗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니면 내가 당신 만나 어떻게 살았는데 내 인생은 어디에 있느냐고 땅을 치고 후회해도 한번 간 인생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이제부터라도 몸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마음이 뭘 원하는지 살펴주면서 자신의 삶을 찾으라 했다.
다리 성성할 때 여행도 하고 치아 튼튼할 때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으라고 했다. 자식은 그들만의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 적응하며 살도록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야만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없을 것이니 이젠 나를 섬기라 하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갱년기를 보내면서 힘들어하는 내 마음을 읽어주신 것 같아 속이 짠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전에 어르신들이 여자 나이 쉰 넘으면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할 때 뭐 그리 눈에 띄게 차이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때만 해도 건강엔 자신이 있었다. 밤을 밝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봐도 아침이면 끄떡없이 일어나 새벽 밥 해서 아이 학교 보내고 가게 일 돌보고 짬나는 데로 밭에 나가 들일을 하면서도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는데 한두 해 사이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어떤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몸이 수시로 변화하다 보니 마음도 위축되어 자신감을 잃어간다. 지난 여름 장마 끝에 무성해진 풀을 뽑고 와서부터 팔이 욱신거렸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팔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팔을 혹사했다. 통증이 심했지만, 이 정도쯤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팔에 강요하면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팔의 통증은 계속되었고 그 통증을 무시하고 두어 달이 지나자 밥을 먹는 것이 불편할 만큼까지 왔다. 오른손이 불편하니 자연스레 왼손을 많이 사용했고 왼손 팔꿈치에도 통증이 느껴지자 그제야 병원을 찾게 되었고 치료가 쉽지 않아 한방으로 양방으로 전전긍긍했지만, 이번엔 팔이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팔에게 사과하고 다독거려줘도 그 화를 풀려 하지 않아 고생하던 중이라 그 어른의 말씀이 더 마음에 닿았을 것이다.
자신을 소중히 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삶의 활력이 생기고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으며 내가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할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하며 나를 섬기고 사는 삶에 충실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