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목표로 내건 공무원연금 개혁의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입안한 개혁안을 지난 10월 28일 발표한 뒤 여당 의원 전원의 발의로 제출했으나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소관 상임위 상정도 무산된 채 정기국회는 폐회했다. 다행히 지난 10일 여야는 연내에 국민대타협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으나, 그 전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배경은 매년 커지는 연금 적자와 이를 국민의 혈세로 메꿔야 하는 재정 부담이다. 금년만도 2조 5천억 원을 재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정부는 지난 10년 간 15조 원의 적자를 재정에서 보전하였으며, 향후 10년 간 예상되는 보전액을 55조 원으로 추정한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재정 부담은 그렇잖아도 악화하는 국가 재정을 더 한층 압박하는 시한폭탄임이 분명하다.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여당안의 골자는 국민연금과는 천양지차로 수혜가 큰 현재의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편하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이 내는 기여금은 올리고(급여의 7%-> 10%), 연금 지급률을 하향조정하며 지급 개시연령도 늦추는(60 세->65 세) 것이 주 내용이다. 이 개혁안에 대해 당사자인 공무원과 공무원노조는 당연히 예측된 일이지만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공무원 급여의 현실을 무시하고, 그 보상책으로 설계된 퇴직 후의 생활 보장마저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개악이라고 주장한다.
그럴까? 공무원연금이 도입된 1960년대에서 보면 이런 주장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개발 연대를 지나 우리 경제가 나아지면서 공무원의 급여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주요 국정통계 포털인 ‘e-나라지표’에 ‘공무원 보수추이’가 나와 있다. 주요 지표는 ‘공무원 보수 민간임금 접근율’인데, 비교대상 민간임금은 ‘상시 근로자 100인 이상 중견기업의 사무 관리직 보수’이다. 민간임금을 100으로 할 때 공무원 보수는 2013년에 84.5%로 나와 있다. 이 통계를 근거로 공무원 보수의 현실화, 즉 민간임금 접근율의 상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이 통계의 내면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총취업자는 약 2천500만 명인데 국세청 근로소득 신고자는 1천570여 만 명에 불과하다. 이 통계에 안 잡히는 사람 대부분은 임금이나 고용 조건이 더 열악한 계층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공무원 임금 평균은 총취업자 2천500만 명을 기준으로 10% 안에 거뜬히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코 박봉이 아닌 것이다. 초임 하위 직급자는 박봉이라고 할 수 있으나, 민간 중소기업의 박봉자들과 달리 이들은 해마다 호봉이 올라가면서 임금이 신입자의 3배 수준까지 크게 올라간다. 일부 대기업, 공기업이나 전문직과 비교하면 낮을지 몰라도 국민의 절대다수보다는 월등히 높고, 실직이나 해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민간기업보다 안정적 직업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세금 더 내라면 불만이고, 가진 밥그릇 뺏으려면 반발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무원 연금적자를 메꾸는 이 파행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가까이 있는 일본의 개혁이 좋은 참고가 된다. 일본은 내년 10월부터 공무원연금을 아예 폐지하고 민간 회사원과 같이 우리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 독일이나 프랑스 등도 예외 없이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고 있다. 외국의 공무원이라고 순순히 제 밥그릇을 내놓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식하고 변화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 공무원도 이제 기득권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한다.
정치권도 더 이상 국민적 합의 운운하면서 늦출 일이 아니다.
정치은 애당초 될 성싶지 않은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대타협기구에 기대거나 타협을 빙자한 양보안에 주저앉아 10년 후면 또 다시 바꿔야 하는 어정쩡한 개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