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를 수련할 때 늘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 바로 거리다. 무예라는 것이 수련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종국에는 누군가와 대적해 주먹이나 무기를 겨뤄야 하기에 상대방과의 거리는 곧 승패와 직결되는 문제다. 무예에서 거리는 각각의 무예에서 추구하는 원칙에 따라 멀고 가까움을 조절한다. 예를 들면 태권도는 일반적인 맨손무예들 보다 상당히 먼 거리에 상대를 두고 펼쳐진다. 반면 무에타이를 비롯한 주먹을 함께 사용하는 무예의 경우는 상당히 근접전을 펼쳐야 하며, 상대방과 몸을 맞붙여 수련하는 유도나 씨름은 실제적 기술이 몸을 맞닿아야만 가능한 형태로 발전한 경우다.
반대로 무기술을 활용하는 무예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멀다. 다시 말해 무기의 길이만큼 상대와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 거리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면 둘 중 하나는 사용하는 무기에 공격을 받게 된다. 이러한 무예에서의 거리는 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들은 주로 근접전을 추구하고, 팔과 다리의 길이가 긴 경우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상대와 맞설 준비를 한다. 또한 상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상대와의 거리를 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예에서의 물리적 거리는 그 멀고 가까움에 따라 수많은 공격과 방어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물리적인 거리 뿐만 아니라 공방의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거리가 더해지면서 소위 말하는 적절한 공격 ‘타이밍(timing)’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거리의 문제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 뿐만 아니라 심적인 거리의 변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서로 언쟁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싸움이 격화될수록 더 커지게 되어있다. 바로 코앞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음에도 서로의 목소리는 마치 상대방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믿음을 표출하는 것처럼 커질 대로 커진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혹시나 누군가에게 들을까봐 소곤소곤 하는 모양새만 보일 뿐이다. 조금 지나면 목소리는 사라지고 상대방의 눈빛 하나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단계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 사랑하는 님이 있다면, 굳이 몸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그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통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심적인 거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쟁을 벌이며 싸우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커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기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야 상대가 들어 줄 수 있겠다는 강박관념의 표출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풀어 낼 수 있으며 심지어 그윽한 눈빛만으로도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바로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는 마음의 거리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예에서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제 몸이나 무기를 몇 번 겨루지 않고서도 상대의 실력이나 능력을 간파한다.
이는 부단한 수련을 통해서 나를 넘어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소통의 기술을 터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오로지 일상에 파묻혀 개인의 삶에만 집중하면서 세상의 소통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이다.
그런 이유로 각종 매체를 통해서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세상과 그리고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다른 누군가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무예를 수련하듯 쉼 없이 거리를 조정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가장 시급한 때다. 그러한 소통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본질적인 힐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