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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 본 무예]깨달음은 또 하나의 망각

 

무예에서 깨달음은 매일매일 몸을 통해 조금씩 일어난다. 스승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통해 가르침의 형태로 깨닫기도 하고 혹은 상대와의 겨루기를 통해 몇 번씩 두들겨 맞으며 깨닫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상대와 손이나 칼을 맞대고 수련하다가 깨우치기도 한다. 그래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처럼 남의 산의 못난 돌도 받아 드리기에 따라 자신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만약 배움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수련의 속도도 더딜뿐더러 쉽게 무예를 접게 되기도 한다.

그런 신체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무예는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깨우치게 된다. 어제 스승을 통해 새롭게 배운 자세나 개념을 오늘 다시 수련하면 어제와는 다른 몸짓이 만들어진다. 반복을 한다 하더라도 조금씩 자세가 흘러 버려 또 다시 배우고 내 몸을 깎아 내지 않으면 그 깨달음도 한 순간에 도망간다. 그래서 전통시대부터 몸 수련의 방법으로 글공부가 병행되는 것이다. 자신이 몸으로 익힌 것을 글로 쓰고 다시 생각을 정리하거나 옛 선현의 가르침 속에서 무예의 과정 속에 품었던 의문들을 해소하는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깨우치고 글로 적어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거기에 자신에게 괴롭고 불리한 기억은 머릿속 저 멀리에 던져 버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기억만 오랫동안 품으려 한다. 무예 수련에서도 자신이 잘 이해되는 것과 잘 표현되는 것 위주로 기억하고 수련하려 한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깨달았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극히 기본적인 내용도 망각해 버리기 일쑤다. 말 그대로 날마다 깨닫고 깨우쳐야만 궁극적인 몸 수련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깨달음이 작은 것이던, 큰 것이던 간에 쉼 없이 몸이 기억해내도록 깨우침 위에 깨우침을 더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깨달음은 수행정진의 목표로 이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 중 표적인 것이 ‘화두(話頭)’라는 것이다. 화두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야기의 머리다. 수행자가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해 ‘이뭐꼬?’라는 의심을 품고 선사들에게 답을 구하거나 혹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쉼 없이 반복적으로 질문에 질문을 던져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 화두를 풀기 위해 짧게는 몇 달을 고민하거나 혹은 선방에 들어 앉아 수십 년을 참선의 과정과 함께 답을 찾는 고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두는 기본적으로 물음에 대한 대답 혹은 이야기로 풀어진다. 만약 자신에게 던져진 화두를 풀어내지 못하면 더 이상의 수행정진은 불가능하기에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묻고 또 물어 몰입 혹은 무아지경에 이를 때까지 깨달음을 갈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 화두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진리’란 무엇인가와 근접해 있다. 그래서 화두를 다른 이름으로 공안(公案)이라 부르는 것이다. 공안은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공문서을 말하는 것으로 반드시 이행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음을 말한다. 그 화두를 풀지 못하는 것은 곧 자신의 수행의 목표인 진리를 찾아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 가지 못하는 것이기에 답을 찾을 때까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세상살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깨닫고 또 깨달아야 한다. 한번 깨우쳤다고 그만이 아니다. 어설픈 깨달음은 곧 망각을 향해 가는 지름길이거나 독선과 아집으로 이끄는 고장 난 나침반과 같다. 우리의 일상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이어지듯 생활 속의 작은 깨달음도 쌓이고 쌓여 ‘삶’을 이룬다. 무예를 수련할 때에도 수없이 상대와 손과 손을 맞대거나 칼과 칼을 맞대야만 비로소 본질적인 움직임을 깨우칠 수 있다. 이처럼 깨달음은 혼자 머릿속으로만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인간이기에 깨달음의 과정에서 망각하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시 깨우쳐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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