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의 일대기를 그린「나혜석 평전, 내 무덤에 꽃 한송이 꽂아주오」(정규웅 지음)가 출간됐다.
나혜석은 일제 강점기가 막 시작될 무렵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에서 유학한 미술학도였고, 그림 뿐 아니라 글재주도 뛰어나 문단에서도 폭넓게 활동했던 인물.
천재적인 예술가이면서 일제의 사슬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독립운동가, 특히 제도와 인습의 굴레에서 조선 여성을 해방시기 위한 여성 운동가로서도 그의 삶은 눈여겨 볼 만하다.
20세기 초 대표적인 신여성으로서 나혜석의 행보는 오늘날에 견주어 봤을 때도 '파격' 그 자체다.
신문에 공개 청첩장을 내 신식 결혼식을 올린 그는 남편 김우영에게 혼인 각서를 쓰게 하고 신혼 여행길에 죽은 애인의 묘소를 찾는가 하면, 그 이른 시대에 남편과 단둘이 배를 타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한다.
1927년에 떠난 세계 여행은 그러나 나혜석의 삶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여행길에서 한동안 남편과 떨어져 파리에 체류하던 중 우연히 만난 조선인 사내 최린과 사랑에 빠져 결국 이혼까지 당하게 되는 것.
나혜석은 궁지에 몰린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김우영과 결혼하기까지의 내력, 10년에 걸친 부부 생활, 최린과의 관계, 어쩔수 없이 이혼 요구에 응해야 했던 사정 등을 낱낱이 담은 '이혼고백장'을 발표, 파문을 일으킨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종종 방종한 여성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詛嚼)시키는 일이 적지 않사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한 일입니까."
하지만 이같은 호소에 대해 사회는 질시와 냉대로 답할 뿐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예술가로서, 신여성으로써 나혜석이 보여준 선구자적 업적들이 폄하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병마와 외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행려병자로 숨을 거두기까지, 참담했을 심정을 담아 나혜석은 마치 유언을 하듯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청구(靑邱, 남편 김우영의 아호)씨여! 반드시 후회 있을 때, 내 이름 한번 불러주소. 四남매 아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송이 꽂아다오..."
저자 정규웅은 중앙일보 문화부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휴게실의 문학」「오늘의 문학현장」「글동네 사람들」등이 있다.
중앙M&B刊. 317쪽. 1만5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