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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이야기]어느 가장의 착각살인

 

청양의 기운을 받아 올해에는 좋은 일이 많기를 기대했는데 새해 벽두부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에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소유한 명문대 출신 엘리트 가장(家長) 강씨가 자신의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아내와 큰딸에게는 수면제까지 먹이고 머플러로 목 졸라 살해했다는데, 그렇다면 이는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사전 계획 하에 이뤄진 사건으로 보인다.

강씨는 왜 그랬을까? 자백한 바에 따르면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지만 그래도 현금이 4억원 이상 남아있다는 점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다만 강씨가 자백한 진술내용 중에서 몇 대목을 모아보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강씨는 퇴직사실을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 실직 후 두 딸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생활고 외에 아내와의 마찰 등 다른 범행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강씨는 가족불화는 없었으며 “내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멸시를 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지는 가족동반자살을 계획하고 먼저 가족들을 살해했으나 자신은 미처 자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진술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 ‘가족동반자살’이라는 극심한 가족주의적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나타나고 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가족이 함께 동반자살한 사건들을 보면 가장인 남편의 결정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남편 없이 아내가 홀로 생계를 책임지던 경우에는 엄마가 자녀들을 데리고 동반자살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동반자살의 형태는 서양에서는 흔치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내나 자녀들은 모두 개별 인격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어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가족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해석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가족동반자살은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현상이 아닌가 싶다. 최근 이혼하는 부부가 자녀들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거나 심지어 보육시설에 유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는데, 이번 사건을 접하고 보니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가족동반자살을 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부의 복지제도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있지만 그러한 자녀들을 위한 사회적 복지서비스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 즉 비혼족의 증가가 저출산의 주요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출산, 육아, 가사노동 등으로 경제활동(취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결혼을 연기 혹은 기피하는 반면, 남성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가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이를 아예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역시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측면이 아닌가 싶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룰 때 경제적 활동을 비롯하여 육아 등 모든 책임은 가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원 모두에게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여성만이 가능하지만 경제활동과 가사, 육아 등 가정을 이루면서 필요한 모든 활동은 남녀가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가장은 깊은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의 평등한 역할분담과 인식의 전환은 여성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으로부터 남성들을 벗어나게 하는 데도 매우 필요하다. 기혼여성들의 경제활동이 가장의 책임을 함께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되고 남편들의 가사노동도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라 가족원으로서 당연한 역할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들이 기혼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를 위한 사회적 배려라는 인식이 확산될 때 남성들도 가장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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