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대구(大口).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겨울철 계절생선으로 즐겨 먹고 있다. 지금은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고 있으나 과거에는 매우 귀했던 모양이다. 관청에 바쳐지거나 윗사람에게 선물로 보내지기도 했다. 조선조 초기 문신 권근(權近)은 경상도 관찰사로부터 햇 대구를 받고 쓴 감사의 시가 남아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대구가 많이 잡힌 지역을 경상도의 남해안과 함경도의 동해안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창원, 거제, 진해, 고성, 사천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과 영흥에서 토산품 대구가 많이 잡힌다고 써 있다.
하지만 귀하고 값이 비싼 대구를 잡아 이득을 올리게 되자 인근 지역에서는 대구 어장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대구 어획권을 놓고 전갱까지 벌였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그것도 세차례나 벌인 ‘대구전쟁(the cod war)’이 그것이다. 그래서 대구는 세계 역사상 전쟁의 이슈가된 유일한 생선으로 기록되어 있다.
흔한 생선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선, 대구는 소화가 잘되고 맛이 좋아 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미와 건강식의 재료로 그 인기가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만 보더라고 수많은 대구 음식이 소개되어 있다. 탕은 물론 구이와 전, 지짐이, 조림, 얼간 자반등등. 노산 이은상 시인은 대구를 이렇게 예찬했다. 생(膾)으로 먹고, 말려(乾) 먹고, 국(羹)끓여 먹고, 전(煎)부치고, 달여(湯) 먹고, 구워(燔) 먹고, 포(脯)도 뜨고, 김치에까지 넣어 먹는다고. 껍질도 요긴하게 쓴다.
대구의 껍질을 삶아 가늘게 썰어 무친 것을 ‘대구껍질채’라 하고, 대구껍질과 파를 길게 묶어 초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대구껍질강회’라 해서 경상도 지방에선 별미중 별미로 여긴다. 유럽에서는 바깔라(Baccala) 혹은 스토카피쏘(stoccafisso)라 부르는 주로 소금에 절이거나 건조한 대구로 요리를 하는데 최고급 음식으로 친다.
요즘 대구가 풍년이다. 거제 외포항등 남해안은 물론이고 ‘서해 대구’의 어획량까지 증가하고 있어서다. 추위 속에서도 그나마 애주가들의 쓰린 속을 풀어주는 것은 겨울철 별미 대구가 있어서인데 다행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