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수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뒤적이며 말라붙은 하루를 씻어낸다. 날아오르다 뚝 끊어진 연줄처럼 팽팽히 감아 도는 피곤을 헹구어낸다. 잘 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전기난로 하나 끼고 오들오들 떨던 하루가 어깨 통증으로 밀려온다.
왼종일 집에 있으면서 설거지라도 좀 하고 빨래라도 좀 해 널지 그냥 뒹굴 거리기만 한다는 핀잔에 취업이 마음만큼 안 된다며 오히려 짜증내는 아이의 앙칼진 음성이 수돗물 소리에 지워진다.
출근 전에 설거지며 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해 보면 개수대에는 프라이팬이며 라면 끓여 먹은 냄비 그리고 식탁에 그대로 있는 김치 그릇….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가족들이 틈나는 대로 집에 와서 식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늦은 시간 귀가해서 그 모습을 보면 저녁 준비할 마음보다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서둘러 밥을 안치고 찌개를 올려놓고 설거지를 한다. 마음이 요동치다 보니 그릇 부딪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릇의 여러 층에서 놓쳐버린 삶의 이야기들이 덕지덕지 떼어져 나오고 미처 닦아내지 못한 하루가 얼룩으로 남는다. 아무리 닦아내도 되살아나지 않는 윤기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리는 고슴도치처럼 상처를 내면서도 등 기댈 수밖에 없는,
나를 슈퍼우먼인지 아는 가족들이 야속하기도 하다. 뭐든 엄마만 부르면 해결되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엄마가 해결해 주겠지 하는 그 마음에 언제부턴가 뿔이 달리기 시작한다. 몸이 지치다 보니 가족에게 짜증내는 일이 많아졌다. 별것도 아닌데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기고 웃음으로 해결할 수 있던 일인데 화를 내게 되고 소리를 질러 가족 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금방 돌아서서 후회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되면 또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순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인 것 같다. 괜한 욕심을 내고 사소한 일에 감정을 드러내고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되는데 가슴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가족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겪고 있는 삶의 전환기를 가족들이 이해해주길 바라고 함께 넘겨주길 바라고 있음일까. 혼자 씩씩한 척, 무엇이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척,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내색조차 없으면서도 그걸 가족들이 알아내서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음일까.
이건 분명 이기심이다. 가족들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족들을 힘겹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 힘들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하거늘 그럴 용기조차도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러면서 가족에게 화를 내고 그런 자신이 싫어서 더 화를 내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자리에 눕는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큰 아이 방으로, 작은 아이 방으로 기웃거린다. 미안한 마음에 속이 짠하다. 하루의 설거지가 덜 끝난 기분이다. 오늘 밤도 잠자리에 들긴 어려울 것 같다. 거실에 불을 끄고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본다. 저 많은 불빛 속에도 각기 다른 사연의 하루가 열렸다 닫힐 것이고 우리는 각기 다른 설거지를 하면서 삶이라는 과정들을 이행해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