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전부터 간간이 나부끼던 눈이 점점 커지고 많아지면서 꽃잎처럼 날린다. 쓸쓸해진 시골 장날에 그나마 구경하던 손님들이 걸음을 재촉한다. 한 떼의 사람들이 웃음소리를 남기고 지나간다. 뒷모습을 보니 손에 무언가 하나씩 들고 있다. 조금 있자니 다른 사람이 활짝 웃으며 눈을 털고 들어온다. 예의 그 상자를 열어 같이 보자며 뚜껑을 연다. 상자 안에는 밀폐용 유리 용기 두개가 나란히 들어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꿀단지만 한 게 장아찌 같은 가공식품을 담기에 알맞은 크기다. 며칠 전 금융기관 총회에서 회의 참석자들에게 전하는 기념품을 참석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직접 찾아가서 타오는 모양이다. 들어 올 때의 모습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고 나니 밝게 웃던 자리가 따뜻한 감마저 든다.
살림하는 주부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릇 욕심이 있는 편이라 마트엘 가도 그릇이 눈에 들어온다. 접시는 물론 공기, 국 대접, 조그만 양념종지에서부터 컵이며 냄비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음식의 다양성만큼 그릇의 모양이나 쓰임새도 다양하다. 그것도 대가족으로 살던 집에서 보고 자란 나는 그릇을 살 때는 의례히 죽으로 사는 버릇이 있다. 한 두 명이 밥을 먹던 기억은 별로 없고 늘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을 정도로 빽빽하게 모여 음식을 먹었다. 그러자니 그릇이며 수저가 참 많이도 필요했다.
그게 몸에 배어 지금도 음식도 조금 하면 성에 차지 않고 많이 하고 많이 주는 편이다. 도무지 요즘 세태와는 거리가 먼 조금 구식 살림을 좋아한다. 그릇이 있으면 있는 대로 쓰고 사람도 있으면 있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다.
설거지를 하다 손이 어색하다 싶으면 어떤 경유에서든 남의 그릇이 섞여 있음을 알게 된다. 오래 손때 묻은 살림은 손이 먼저 익히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릇을 만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 사고 무슨 날에 처음 사용했고, 어떤 사람과 함께 자리했는지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 추억이 된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처음 밥을 지은 밥솥, 처음 남편과 커피를 마신 부부찻잔, 아기의 돌에 친정어머니가 사 오신 은수저, 몇 번째인지 결혼기념일에 벼르고 별러 준비한 와인글라스, 백설기 한 되를 찔 수 있던 작은 시루가 내 앞에 놓인 시련을 건너게 하는 삶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선물 받은 전통다기의 다로에 뚜껑부분이 깨졌을 때의 애닯은 마음에 깨진 조각을 붙여보려고 애를 쓰던 날도 벌써 옛날이 되었다.
고장 난 전기밥솥 내통을 꺼내 빨래 삶는 그릇으로 쓰고 있었는데 행주를 삶다가 깜빡 잊고 밖에 나가 온 집안이 연기로 가득하고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아 넋이 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소풍을 갔다 도시락 안에 든 반찬통을 잊어버렸다고 울먹이던 아들이 벌써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건조한 내 마음을 단비처럼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릇이 어디 음식을 담는 그릇뿐이랴. 넓은 의미로 보면 의복이나 양말 또한 그릇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엄밀히 말하면 그릇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일을 하는 그릇은 누가 뭐래도 여성의 몸이라고 본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배 안에서 기르고 고통 중에 낳아 기쁨과 희망 좌절 분노의 무늬가 아로새겨진 신비한 그릇을 다른 어느 곳에서 찾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