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살아 있는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것이 호흡이다. 인간이 단번에 마실 수 있는 공기의 양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 공기를 마시고 헌 공기를 내뺃는 것이 호흡인데, 숨을 자연스럽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으로 본격적인 생명활동은 시작된다. 어린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 올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스스로 호흡하는 일이다. 이처럼 생명이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을 만드는 행위는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을 의미하는 말로 ‘숨을 거둔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난 후 비로소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만약 호흡하기가 어려워지면 다른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고, 오로지 숨을 쉬어야겠다는 지극히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온몸은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이거나 갑자기 목구멍이 막혀 숨을 쉬기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부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오직 하나 ‘호흡’뿐이다. 그만큼 호흡은 모든 생명활동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볼 수 있다.
무예를 배울 때에도 호흡은 모든 움직임의 바탕이 된다. 오로지 들숨과 날숨 밖에 없는 단순한 생명활동이지만, 그 안에 수많은 무예의 동작들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좀 더 빠르고 강한 움직임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호흡이 필요하다. 호흡이 거칠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격렬한 움직임을 만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예의 초보자일수록 몇 가지 동작을 하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거리며 자세가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오랜 수련을 거친 사람일수록 깊은 호흡을 통해 안정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
동일한 무예의 움직임을 만들 때에도 누가 더 안정적으로 호흡을 풀어 가느냐에 따라 속도와 파괴력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호흡에 대한 다양한 수련법이 전통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움직임에 걸맞는 호흡을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힘의 전달도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몸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무예에서 적절한 호흡의 변화는 신체 움직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변화하고자 하면 호흡을 먼저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늘 하는 들숨과 날숨이지만 상황에 따라 늘 변화하는 것이 호흡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년운수나 사주팔자를 볼 때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이 주역〈周易〉이다. 다양한 형태의 괘(卦)들이 모여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유교에서는 〈역경〉이라는 이름으로 삼경(三經)의 하나로 주역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주역의 바탕은 들숨과 날숨이라는 기본 호흡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음과 양으로 구분하고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역으로 보면 호흡을 바탕으로 음양이란 괘의 최소단위인 들숨 음효(--)와 날숨 양효(―)로 구분하고 조합하여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 절대적이거나 영원한 들숨 혹은 날숨은 존재할 수 없듯이, 절대적인 음이나 양도 존재할 수 없다. 지극히 상대적인 입장에서 변화의 흐름을 음양과 오행으로 풀어가는 것이 주역의 근원이기도 하다.
〈주역〉사상의 난해한 내용을 체계적이고 철학적으로 서술한 책인 〈주역 계사전(周易 繫辭傳)〉을 보면,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이라는 세 마디로 주역을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이 말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 변화 속에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인간의 호흡처럼 들숨과 날숨처럼 쉼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호흡의 변화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호흡과 흐름을 바르게 풀어야 제대로 된 무예가 펼쳐진다. 세상살이도 그 호흡 속에서 잘 놀고, 그 흐름을 잘 타야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