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56차 세계보건기구(WHO)총회가 열렸다. 그리고 192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담배규제 협약이 채택됐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0만명이 흡연으로 사망하고 오는 2020년엔 1천만명에 이를 것이라 예상되자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세계보건기구가 나선 지 5년만에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주요 내용은, ‘5년 안에 협약 가입국에서는 모든 담배 광고, 판촉, 후원 전면 금지’ ‘담뱃갑의 최소 30% 면적에 암에 걸린 폐의 사진을 싣는 등 경고문구나 그림을 삽입’ ‘담배 자판기에 미성년자의 접근 금지’ 등등 다섯가지였다.
그러나 초기에 실천하는 나라는 얼마 없었다. 특히 ‘경고그림’을 싣는 나라는 2001년 세계 최초로 담배에 경고그림을 도입한 캐나다를 비롯 2002년 도입한 브라질, 싱가포르(2004년 도입) 태국(2006년 도입) 등 극소수에 불과 했다. 세계 최대 담배생산국인 미국조차 2012년에 가서야 ‘끔찍’하고 ‘직설적’인 새로운 경고표시를 의무화한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참여율은 저조했다. 당시 미국 정부가 담배 포장을 변경하기로 한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었다. 따라서 미국인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 흡연이며, 이로 인한 연간 사망자수는 44만3천명에 이르고 니코틴 중독에 따른 의료비 등 경제적 부담만도 매년 2천억 달러에 달하는 데도 그동안 그림삽입을 미뤄온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재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도입한 나라는 총 63개국. 아태지역에서만 15개 국가에 이른다. 그림은 흡연폐해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한 혐오사진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 일부국가에선 아직도 그림 삽입을 놓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흡연의 권리와 건강 침해를 주장하는 단체끼리 이해가 상충돼 잇따른 소송이 벌어지고 나라별 지역 마다 ‘경고 그림삽입시행’ ‘시행보류’가 반복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어서다.
담뱃갑에 ‘경고그림’이 없는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부터 정부 입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국회도 이런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2002년 이후 총 11번 제출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역시 이해관계자들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영향력(?) 때문이다. 그런 관련법이 최근 국회 법사위에 다시 상정됐고 통과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고 한다. 양쪽의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들 이번엔 어떤 결정을 할까?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