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 명절 연휴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설에는 귀성전쟁도 극심하지 않았고, 경제사정 때문인지 택배대란이니 하는 말도 없었다. 설 명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물이다. 사는 게 팍팍하다 하더라도 한 두 가지 명절 선물은 주고받게 된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고마운 직장 상사, 존경하는 스승,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받아야 할 선물이 은근히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어느 선에서 해야 되나,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기분 좋은 선물이 있고 괜히 찜찜한 선물도 있다. 어떻든 선물이란 단어는 기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선물만큼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때로 감동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은 소통과 이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정성이 깃든 선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와 고마움을 표시할 일이 많다면 그만큼 따뜻하고 훈훈한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선물로 보내 온 물건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은정(恩情)이 맺어졌으니, 이미 사정(私情)이 행해진 것이다.”라고 했다. 청렴한 관리는 아무리 사소한 물품이라도 그것이 개인적인 정리에 얽힐 수 있으니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최근 어느 병원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해 온 소방대원에게 커피를 대접한 것이 감사팀의 지적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감사팀은 ‘앞으로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서면 확인까지 받아갔다고 한다. 급하게 환자를 이송해 온 사람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는 게 문제시되는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 다산 선생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았을까? 아마, 아무리 민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뇌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커피 한 잔에는 고생하는 분을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귀중한 문화재다. 이 세한도의 창작 배경에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선물이야기가 담겨있다. 추사 선생은 절해고도 제주도 대정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혹독한 고독을 견디며 위리안치의 기약 없는 유배생활이 5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화려한 그의 경력도 세간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때 제자 이상적이 험한 뱃길 건너 스승을 찾아왔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통역 일을 하고 있었던 그는 스승에게 드릴 책을 어렵게 구하여 제주까지 온 것이다. 책을 받아든 스승은 감동했다. 권력에서 밀려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신을 잊지 않고 먼 길 와 준 것이 고마웠고, 책을 선물한 것은 더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스승은 말없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낙관도 찍었다. 그 그림을 책선물의 답례로 주었다. 그게 세한도다. 한 폭의 간결한 그림에는 사제의 깊은 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세한도의 가치를 더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식과 재능을 갖춘 사람만이 품격 있는 선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사와 고마움의 깊이가 가격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서민들은 달걀 한 꾸러미, 양말 한 켤레, 그런 사소한 것들을 명절 선물로 주고받으며 행복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선물을 전하는 데도 편리함이 우선이다. 새해 선물도 택배로 전달하고, 인사도 카톡으로 한다. 너나없이 바쁜 세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방법과 형식은 변하더라도 정을 나누는 가치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 이상적에게 말했던 ‘장무상망’의 정신도 여기서 나온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자식들에게 이것 저것 다 싸 보내고,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보며 흐뭇해하시는 부모님. 그런 부모 마음이 바로 소중한 선물이며, 또한 선물이 지닌 아름다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