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를 맞은 거리는 한산하다. 시내 상가로 들어서니 상점마다 문을 닫아걸고 낮에도 불빛이 가득하던 건물 안이 캄캄하다. 북적이던 인파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길 양쪽에 자동차가 진을 쳐서 차를 대려면 이곳저곳 빈틈을 찾던 거리가 텅 비어 썰렁하기만 하다. 인파와 자동차가 없는 거리는 넓어서 좋지만 마치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에 들기라도 한 듯 왠지 낯설고 서먹서먹하다. 찬바람만이 휘익 지나가는 거리는 마치 황야의 무법자가 나타나기 직전의 괴괴한 풍경이 연상된다. 또박또박 발소리를 내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걸어 아들이 운영하는 떡볶이 체인점을 들어선다. 설날에 영업을 하더니 저녁의 어수선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개업한 이래 명절이고 여름 휴가철이고 영업을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아들은 이번 구정에도 손님을 기다리고 손님들께 최선을 다한다며 휴일을 반납한 상태다. 그런 아들이 딱하고 기특하여 아들보다 일찍 가게에 나오는 참이다. 문을 열고 구석구석 정리하고 쓸어내고 환기를 시키고 나니 가게 주변의 거리까지 환해 보인다. 정적이 흐르는 공간을 혼자 안팎으로 왔다갔다 하는데 “오늘도 문을 여나요?” 하는 사람소리가 들린다. 사람 소리가 왜 그렇게 반가운지, 얼른 반겨서 예에, 하고 얼굴을 드니 아들이 너스레를 떨며 들어선다.
“이런, 좀 쉬지 나오셨나요. 아들,”
“소자는 어머니께서 이 정적 속에 두려움을 느끼실까 두려워 나왔으니 이제 어머니께서는 집으로 들어가셔도 되시옵니다. 어머니.”
아들이 내 기분을 상승시키느라고 넉살을 부리니 나도 받아서 대꾸를 한다. 정적이 흐르던 싸늘한 거리가 금방 사람냄새가 나는 공간이 된다.
가게 안을 정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물건을 정리하면서 내놓은 박스를 아저씨가 리어카에 가득 싣고 계신다. 추우나 더우나 하루에 두 번씩 거리의 박스를 수집하는 아저씨는 아침 저녁 거리를 한 바퀴 돌아 상점마다 나오는 박스를 수거하시는데 언제 봐도 밝은 모습에 부지런하시다. 아직은 동장군이 버티고 있는 겨울의 아침을 리어카를 끌며 땀을 흘리는 아저씨를 보자 아들과 나는 동시에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인사를 하니,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저씨는 “올해는 부자 되셔요.” 하시는 게 아닌가?
“ㅎㅎ네, 아저씨도 부~자 되셔요. 그런데 명절인데 며칠 쉬시지 그러셔요?”
“네, 운동도 할 겸, 거리에 내놓은 것들이 나뒹굴면 지저분하니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아저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박스와 재활용품을 수집하여 생활을 하시는데 늘 밝은 모습이시다. 어쩌다가 날씨가 몹시 추운 날, “아저씨. 뜨거운 국물이라도 드시고 가셔요.” 하고 권해도 한 번도 응해주시지 않는 분이시다. 비록 집집마다 내놓은 재활용품을 수집해서 살아가시긴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조와 주관이 뚜렷한 분이다. 정적 속에 나타난 아저씨가 반가워 복을 나누는 것처럼 이 썰렁하게 바람 지나간 거리에 황야의 무법자가 나타났더라도 우리는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리어카 아저씨는 ‘올해는 부자 되셔요.’ 하면서 서로의 복을 빌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동네에는 역시 사람이 살아야 제격이다. 각박한 삶 속에서 아옹다옹하며 살다가도 슬프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서로 위로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람 사는 맛을 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