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영원한 2인자로 불리던 전직 고위층의 상가에 이름만 대면 금방 알만한 인물들의 면면이 화면에 명멸하고 가까운 집안이기도 한 대통령께서도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명복을 빌고 유족을 위로하는 장면은 여느 상가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평생의 반려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도 노 정객은 훈수 정치로 불리는 이런 저런 말을 들려준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살기 어렵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국정의 중심에서 이끌던 인물로 안타까운 마음이 어찌 없을까.
얼마 전 고인의 생전에 그렇게도 극진하게 병간호를 한다는 소식을 신문지상에서 접한 적이 있다.
정계의 거물로서가 아니라 한 지아비로 보여주는 사랑이 존경을 넘어 감동으로 전해진다.
부부란 천겁의 인연으로 맺어진다고 하는 말이 있다. 성경에도 사람이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된다고 했고 결혼을 인륜지대사요 이성지합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결혼이 인연의 소중함 보다 신혼집과 혼수품에 딸린 판촉물처럼 보인다. 물론 남의 일이라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쉬운 만남이 헤어짐 또한 어렵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사소한 말다툼에도 양보하려는 생각은 없고 양보를 받을 마음이 앞선다.
조그만 난관에도 어떻게 해서라도 함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우선 그 고통을 피하고 볼 궁리를 한다. 좀 더 신중하게 평생의 반려를 찾아야 하겠으며 이미 하늘과 땅에 고한 사랑의 맹세를 끝까지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하기야 이런 분위기라면 나는 어쩌면 박물관에 전시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간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으로 사는 일이 명성에 걸맞게 호사스럽고 풍요로운 날만 있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그들 앞에 허리를 굽히고 그 말에 복종하는 동안 아무 굴곡 없이 순탄하기만한 세월이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고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함께 하면서 신의를 지키고 사랑이 지속되기까지 부부가 서로에게 기울였을 정성과 노력을 상상해 본다.
한 남자의 지어미로 살아가는 동안 지아비의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을 여인이 있을까 처음 만나 서로를 익히느라 다투기도 하고 시집살이의 갈등과 어려운 살림을 손끝으로 찢고 꿰매고 자식 낳아 기르면서 사랑한다는 말은 아득하고 속으로는 열두 번도 더 보따리를 싸고 칼로 물을 베기는 또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이, 참 숨 가쁘게 파도를 넘는다.
어떤 때는 바보처럼 나만 혼자 힘들게 사나 싶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음에 스스로 대견하고 고비마다 함께 해준 남편의 희끗한 머리를 쓸어본다.
앞서 떠나는 아내의 하늘길을 배웅하며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국립묘지가 아닌 가족묘를 택한 깊은 사랑, 세상은 그를 2인자로 칭했으나 그들 부부에게는 언제나 서로가 첫째였으리라.
“태를 묻은 곳은 다를지라도
한 무덤에 뼈를 묻기가 소원인
너의 나였다.
나의 너였다.”
-시집 귀밥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