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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잘 걷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동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최대의 특징은 두발로 서서 걷는 직립보행이다. 인간이 직립보행하면서 얻은 최대 장점은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네 발로 땅을 지탱하던 것을 두 발에 맡기고 세워진 척추를 통해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빠른 진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 자세는 인류의 형태, 생리기능,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렇게 자유로워진 손을 통해 좀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본래 전진 운동기관인 앞다리가 팔이 되고 전진운동 이외의 운동기능의 발달을 통해 다양한 도구의 제작과 사용 및 몸짓 운동에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단순히 땅을 짚었던 손가락이 길어지고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변화하면서 인간은 탁월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를 다루는 인간)’나 ‘호모 루덴스(Homo ludens·유희를 즐기는 인간)’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직립보행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직립보행을 통한 손의 활용은 점점 더 인간의 두뇌를 크게 만들었고, 두 발로 중심을 잡기 위하여 다양한 신경계통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발 뼈의 세분화와 정교화가 이뤄져 두 발로 자유롭게 걷고 달리는 운동수행능력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두 발을 이용한 직립보행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삶의 방식과 신체 발달을 이뤘으면,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든 혁명적인 진화의 핵심으로 작용하였다.

무예에서도 직립보행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 보법(步法) 즉, 걸음법이다. 보법은 단순히 걸음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이나 발 혹은 무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정교하게 갈고 닦은 무예의 기초 움직임이다. 만약 보법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와 맞서거나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려고 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마치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에게 달리기를 시키면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넘어지고 마는 이치다. 수없이 걷다 넘어지면서 비로소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수많은 보법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보다 안정적인 무예의 몸쓰임이 가능해진다.

보법은 적절한 중심이동을 통해 상대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의 공격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맞지 않으면 그만이고, 나의 공격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상대에게 적중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중심에 보법이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보법의 차이를 통해 각 무예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무예에서 보법은 기본 중에 기본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보법의 수련은 다른 기본기보다 더욱 철저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 수련 해야만 한다. 보법의 움직임은 비록 단순하지만, 몸에 익히기가 어려워 쉽게 무너지고 만다. 일상에서 걷는 걸음법이 자꾸 무예의 보법 수련에 영향을 끼치지 때문이다. 그래서 무예의 고수일수록 평소의 걸음걸이 또한 그 무예의 흐름처럼 변화하는 것이다.

이 보법의 수련과 관련하여 가장 절적한 문장이 〈논어(論語)〉에 등장한다. 논어의 태백편(泰伯篇)을 보면 배움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학문을 하는 데는 배워서 미치지 못하는 것같이 하고[學如不及(학여불급)], 배워서 안 것은 잃어 버릴까 두려워 하는 것같이 하여야 한다.[猶恐失之(유공실지)]”라고 하였다. 공부를 할 때에는 뒤쫓아도 못 잡는 듯 부지런히 배워야 하며, 그렇게 얻은 결실은 혹시 잊어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태도로 쉼없이 익혀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번 보법이 자신의 몸에 안착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일상적인 걸음법으로 인해 끊임없이 간섭받는 것이 무예의 보법이다. 자신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보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몸 수련이든, 마음 수련이든 항심(恒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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