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새로 시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일이 아님에도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함으로써 혹시 그 일이 잘못되었을 때 미리 자신의 문제를 덮으려는 지극히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또한 이미 흘러간 일이나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할 때에도 당시의 좋았던 사회 상황이나 배경은 뒤에 제쳐두고 오로지 험난한 과정을 통해 성장했음만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이룩한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아마도 모든 인간들이 갖는 공통된 속성으로 지나간 자신의 역사에 대한 합리화의 연장선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늘 동일하게 등장하는 것이 ‘남 탓’과 ‘세상 탓’이다. ‘잘되면 내 덕이요, 잘못되면 남 탓'이라는 옛말처럼 늘 문제의 본질을 외부로 돌리며 자신은 교묘히 빠져 나가려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귀인오류(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어떤 일의 성공시 자신의 역할이나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당시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나 습성을 일컫는 말이다.
무예를 수련할 때에도 이런 귀인오류를 범하는 일이 잦다. 자신의 수련부족이나 이해도를 접어두고 오로지 스승 탓이나 연장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칼을 수련하는 공간에서 짚단이나 대나무를 베는 훈련 중 물체가 제대로 베어지지 않는다고 애꿎은 칼에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자신이 속한 무예단체를 떠나 새로운 신생단체를 만들 때에도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근래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신생 무예단체들의 수장들 사이에서 쉼없이 이런 이야기를 전파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자신이 온갖 난관을 뚫고 처음으로 이것을 만들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또 다른 이가 자신의 고유한 것을 낚아챈 마냥 세상에 넋두리를 던지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진정한 원조고 정통이며, 나머지는 모두 사이비이라는 논조다. 이 모두가 무예를 통해 몸 수련과 마음 수련을 올바르게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자기가 있다.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일도 있을 수 있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신의 수련의지가 대부분의 결과를 만드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일단은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보다도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내 탓’을 먼저 읽어내야만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늘 그렇게 남 탓과 세상 탓만 하다가는 영원히 자신이 만든 사슬에 묶여 벗어 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논어(論語)〉의 자한편(子罕篇)을 보면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산을 쌓아 올리는데 [譬如爲山(비여위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하여도 [未成一궤(미성일궤)], 그 일을 그만두었으면 자기가 그만둔 것이다 [止(지) 吾止也(오지야)]. 세상사 모든 일이 자신의 눈으로 펼쳐지며, 그 결과도 오롯이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남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이 먼저 한 걸음 더 나아가 뒤에 걸어오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더 현명하는 일인 것이다. 이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면, 그냥 높은 산에 올라가 크게 고함한번 질러 풀어내는 것이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속된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로맨스든 불륜이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기본이다. 자신의 로맨스를 아무리 멋있게 포장한다 하더라도 세상 누군가는 그 진실을 안다. 남을 속이는 것보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