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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다시 펜을 잡으며

 

신문사를 떠난 지 꼭 3년 6개월만에 펜을 다시 잡는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만화영화사에서 잠시 일했다. 앉아서 일하는 그곳은 애초부터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한 우물을 파라 했던가? 함께 다니며 용케도 끝까지 버틴 친구는 지금 대학교수다. 그러나 나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신문 방송 등 수 많은 언론사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최종 면접에까지도 간 곳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기자와는 인연이 없는 듯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등학교 선생이 됐다. 이도 3년 가까이 하고 나니 싫증이 났다. 선생을 하면서도 수습기자시험에 계속 응시했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글쟁이’의 욕심이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재수 끝에 경인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뛸 듯이 기뻤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신문사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동기들보다는 입사가 좀 늦었지만 열심히 했다.

만 30세가 되던 해에 언론계에 발을 디딘 나는 신문사 근무 25년째 되던 해 경기신문사 편집국장의 직을 떠나게 됐다. 4반세기 동안의 짧지 않은 기자생활을 마치고 2012년 3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대학 조교수가 된 것이다. 3년 간 교양필수과목인 ‘글쓰기’를 가르쳤다. 몇 몇 신문사 칼럼과 사설을 집필하고 있던 터라 엄밀하게 말한다면 펜을 놓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쓰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것’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학교를 떠났다. 이 결심은 사실 꽤 됐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어서 내가 쓰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오랜 만에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마음을 더 짓누른 것은 상대평가제도다. 지금도 대학생들은 이에 대해 반발 중이다. 평가지침에 의거해 수강학생의 50%는 C학점 이하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매 학기 성적을 매길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대학교수는 누구나 선망의 직업이라 한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10년 이상 이 대학, 저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를 해도 교수가 되기란 쉽지 않다. 어렵사리 조교수에 임용됐다 하더라도 정년을 보장받는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논문을 수도 없이 써야 한다. 그것도 대학마다 논문통과가 극히 어렵다는 SCI급을 요구한다. 계약직이던 나는 학생들 가르치는 것 이외에 그런 부담은 없었지만 3년 간 경험해본 결과 교수도 생각보다 어려운 직업이다.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야 한다. 학생들로부터 높은 평가점수를 받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잘 가르쳐야 한다. 지방대학은 입시철만 되면 신입생 끌어모으기에 안간힘을 쓴다. 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인 6년 후에는 대학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보다 10만명은 넘을 거라 한다. 그러니 웬만한 대학은 신입생 정원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포화상태로 대학을 허가해준 교육부는 이제 와서 부랴부랴 구조조정의 칼날을 대학에 들이댄다. 대학들은 죽겠다고 아우성 친다.

지난 3년 간의 외도(外道)(?)는 내 인생에 많은 경험이 됐다. 비록 3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대학이라는 사회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소중했다. 이제 언론사로 다시 돌아왔다.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만큼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체육부 기자 시절 경기장을 찾아 뱅뱅 돌고,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특파돼 손짓발짓해가며 취재하던 일 등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였다. 간간이 터뜨린 특종보도는 타 사 기자에게는 미안했지만 기자만이 홀로 맛볼 수 있는 희열감이었다. 해외에 나가보기란 여간 쉽지 않았던 때 세계 여러나라의 실상을 보면서 취재하고 보도하는 기회가 있었음도 큰 행운이었다. 자고 나면 세상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가 늘상 겪는 희로애락(喜怒哀樂)들이다. 그 속에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새내기처럼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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