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를 그리세요.” “그 밑으로 몸통을 그리세요.” “아니, 아니 더 아래로 내려와서” “아니 조금만,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눈을 가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손끝으로 가늠해보는 위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꾸 실수를 한다. 오직 옆에서 설명해주는 사람의 설명과 나의 감각에만 의존하여 그려보는 그림. 설명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자신의 감각을 차분하게 믿는 정도에 따라 그림의 완성도는 달라진다.
워크샵에서 두 사람이 짝이 되어 한 게임이다. 한 사람은 눈을 가리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릴 대상을 설명 해주는 게임. 안대를 풀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해괴한 그림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 그럴 줄 알았다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 등등. 원본 그림에 가장 가깝게 그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말은 옆 사람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서로가 힘이 되어 함께 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 작품. 참, 사람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코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작품성 또한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웃는 모습이든, 슬픔에 겨워 위로를 해 주는 모습이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든 말이다. 결국 우리는 사회 속에서 불완전한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 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은’ 시인께서는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시’라는 작품으로 표현하여 ‘만인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만들어가는 삶. 그 자체가 시, 즉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다니. 결국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는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유아기를 거쳐 나름대로 시작한 습작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수정이 필요할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가 되는 삶, 삶이 만들어가는 작품은 개성이 독특하여 작가 또한 혼자가 아니며 그 색깔 역시 다양하여 어떤 잣대로도 해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들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 감상하는 방법이 아닐까. 시와 삶을 비유하다보니, 생뚱맞게 집어넣은 행과 연을 구분하여 수정해가듯 수십 년 째 퇴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아름답거나 특별히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 이 또한 내가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이라니, 은근히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고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결코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작품. 그 누구도 완벽한 작품이라 지칭할 수 없는 삶. 그 불완전하고도 현재진행형인 삶을 위해 나는 또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숱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끊임없는 도움과 위로를 통한 퇴고의 과정을 거치며 말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