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즈음이면 두어 쌍의 선남선녀 결혼 주례 청탁이 들어온다. 결혼당일 선약된 것이 없고 아주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거절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필자에게까지 왔을까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 때문이다. 주례사는 그동안 해왔던 두어 개의 기본 원고를 바탕으로 그 쌍에 적절하게 수정 보완하여 길면 5분정도의 양으로 준비한다. 그 내용은 일반 주례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조금 차별성이 있다면 종교가 기독교인 경우에는 하느님 말씀도 곁들이고 아주 간단한 영국속담 하나를 들려주는 것인데 ‘마지막 말은 여자가 한다’라는 말이다. 누가 주례사를 귀담아 듣겠느냐만 신부 측 부모는 주례사 중에 대체로 이 말만 기억하고 아주 흡족해 한다. 당연히 신랑 측 부모는 좋아할리 없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애써 수긍하는 표정이다. 영국 어느 지역 어느 시대의 속담인지, 실제로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는지조차 확인한 바 없으나 이 말은 아주 오래 전에 가까운 어른한테 귀동냥 했던 말인지라 그 때 이 말이 각인되었던 것을 인용하고 있다.
필자는 이제 결혼 33년을 맞이했다. 예수 생애 기간이니 결혼에 대해 한 소리 할 만큼은 된 것 같다. 신세대 부부는 남편이 아내에게 집안경제를 모두 위임하거나 어느 정도 나누어지고 각자 수입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80세 이상 세대는 젊은 시절 대부분 남편이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쥐고 있었고 60대부터는 아내에게 위임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용돈을 받는 가정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거에 집이나 토지를 매매할 때는 집안에서 가장 남자어른이 독단적으로 처리했으나 지금은 남편의 의견을 참고해 주는 정도에서 아내가 결정한다. 마지막 말은 여자가 함으로써 아내가 갑이고 남편은 을이 되는 셈이다. 아침을 남편 혼자 차려 먹고 출근하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긴 세월 여성들은 돈 벌이는 물론 온갖 살림과 허드렛일, 자녀 양육까지 도맡아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섬이나 어촌에서는 남자들이 위험한 어선을 타는 만큼 여자들의 일은 가중되었다. 이제 겨우 성 평등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지만 앞으로 남편들은 출산만 제외하고 과거 아내들이 해왔던 모든 일들을 해야할지 모른다. 남성들은 이제 이런 변화를 숙명으로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먼저 가정의 평화가 무너질 공산이 크다. 성서에도 현세를 부요하게 누리는 이들에게 네가 받을 상은 이미 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대흐름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역사를 보면 여성들은 정말 모질게 고생만 해왔다. 그 고생 속에서 남편에게 폭행까지 당하고 죽은 듯이 일생을 살았던 아내들도 많다는 것을 남성들은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는 소수 부자 양반집에서만 광 열쇠를 안주인이 갖고 있었지만 여전히 ‘일부다첩’ 문화에서 질투조차 금기시된 여성들의 삶이었다. 대한민국은 서양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기독교문화가 조심스럽게 변혁을 시도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여전히 성추행과 희롱, 폭력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정에서 조차 여성이 가질 권리가 과거로 회귀된다면 어느 여성이 결혼을 하려고 할까? 출산이 적어 국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학령인구 감소는 정부가 대학구조개혁을 하는 제일 큰 명분이다. 결국 건강하고 화평한 가정을 이루고 국가 경제도 대학도 살릴 수 있는 근원지는 여성이며 여성들은 과거와 현세의 보상을 지금부터 시작하여 최소한 남성우월 역사가 흘러온 기간만큼은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말은 여자가 한다’는 말은 결국 아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영국인들의 생활 속담이고 또 이 말이 분명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남편들이 조용해야 집안이 평안해진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올해 남성들은 작년보다 더 웅크리고 내년에는 한층 더 움츠리게 될 것이다. 자책하거나 자존감을 지키려하기 전에 오랜 기간 여성들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남성들의 신세도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