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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라고?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이번에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그치?~김영란법이 뭐냐, 이렇게 얻어 먹잖아요? 3만원이 넘잖아? 1년 해서 100만원 넘잖아? 이게 김영란법이야. 이런 게 없어지는 거지.” 이완구 총리가 후보자 때 기자들과 오찬하며 한 발언이다. 밥 먹자고 한 사람은 누군데 누가 들으면 기자들은 밥이나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 같아 창피하다. 이른 바 ‘김영란법’이 결국 3월2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계 없어도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들이 왜 포함됐을까? 그것은 기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 깊숙히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기자들에게 피해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언론사를 언론기관이라 칭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국가기관 정보기관 등과 같이 ‘00기관’으로 불리는 자체가 다분히 권력적이고, 권위적이다. 언론은 비판을 주된 기능으로 하기에 각급 기관이나 취재원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다. ‘기자와 세무공무원 경찰 셋이 밥을 먹으러 가면 누가 계산을 하느냐’는 물음에 답은 식당 주인이라는 넌센스 퀴즈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쯤되면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공직자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 중 하나가 촌지다. 1991년 11월 보사부 출입기자단이 업계와 고위 공무원들로 하여금 추석 떡값 명목으로 무려 8천850만 원을 모았다. 현재로 따진다면 엄청난 거액이다. 기자들 사이에서 ‘여름 보사, 겨울 문교(교육부)’라는 말이 나돌 당시여서 보사부는 역시 물(?)좋은 부처였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준 셈이었을까? 국민들은 ‘그러면 그렇지… 빙산의 일각일 거야.’라고 했다. 2009년에는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기자들에게 촌지를 돌려 구설수에 올랐다. 출입기자들과 취임 이후 첫 식사 자리에서 8명의 기자들에게 추첨으로 각각 50만원씩이 든 봉투를 건넸다. ‘돈은 건넸지만 촌지는 아니었다’는 법무부의 해명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보사부 기자단 촌지사건이 터진 25년 전 나도 촌지를 받아본 적이 더러 있다. 누구처럼 공무원을 시켜 거둘 정도로 간이 큰 건 아니었고, 거둘 데도 없는 출입처였다. 명절 때면 기관장과 청내 간부 공무원 일부가 떡값(?)을 모아 기자실에 얼마간 내놓고 가는 게 관례였던 시절이다. 거절하기도 민망스러웠다. 출입처에는 수위 청소아주머니 정원사 등이 수 십명 근무했다. 기자실로 들어온 촌지를 모았다. 백화점에 주문해 이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었다. 청내에 대학입시 수험생이 있는 직원들에게 수능시험일을 앞두고 찹쌀떡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냥 혼자 쓰기가 낯 간지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촌지 받은 걸 자랑하는 것도, 이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떳떳하지 못했고 뒷통수가 아직도 따갑다. 가끔씩 그때 생각이 나지만 지금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사회 각 분야가 투명해졌듯이 언론도 마찬가지다. 1988년 언론자율화 이후 언론사와 기자의 숫자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촌지를 주고받는 풍토는 거의 사라졌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교사 언론인의 금품수수를 없애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이 반영된 법이다. 그래서 ‘김영란법’ 적용대상이 된 언론인이 공직자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 벌일 이유가 없다.

지금의 독자들은 기자들보다 때로는 더욱 비판적이고 분석적이다. 그러기에 기자들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기 위해 오직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펜 한 자루를 들고 시대의 어둠을 고발하는 ‘무관의 제왕’이 돼야 한다. 누구의 말처럼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들은 절대로 초비상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제59회 신문의 날을 보내며 떠오른 씁쓸한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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