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라는 ‘제중원(濟衆院)’의 처음 명칭은 왕립 광혜원(廣惠院)이었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우정국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미국 의료선교사 알렌이 고종에게 건의, 1885년 4월 10일 서울 재동에 설치 될 때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나 2주 만인 4월26일 폐지되고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뜻의 제중원으로 개명됐다, 이유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광혜원은 왕실 관계자들을 위한 치료시설 이었던 반면 이름이 바뀐후 일반인들의 병을 치료했던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중원은 개원이후 치료기관으로서 역할 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의학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갑오개혁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년 만인 1904년 제중원이란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의 재정지원을 받아 그해 남대문근처로 제중원을 옮기고 이름을 세브란스병원이라 명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중원이 지난 10일 설립 130년 주년이 됐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측은 자신들이 ‘제중원의 적자’라며 뿌리논쟁을 벌였다. ‘제중원을 국가에서 운영했으므로 국립병원이며 서울대병원이 적통이다’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 제중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뿌리다’ 라는게 논쟁의 요지다. 다툼의 강도를 말해주듯 두 병원은 서로 다른 날짜에 13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소속됐던 외아문(현 외교부)의 업무일지 자료에 근거해 고종이 백성에게 근대병원 설립을 알리는 방문(榜文)을 붙인 4월 3일, 세브란스병원은 알렌이 환자 진료를 시작한 4월10일을 제중원 설립일로 잡고 각각 행사를 벌인 것이다. 의학계에선 이를 두고 소위 '제중원 뿌리 논쟁’이라고 한다. 대외적으로 맨 처음 시작 된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협주최 ‘한국현대의학 100년사 사진전’에서 초창기 제중원 자료들을 연세의대로부터 넘겨받은 후 전시회에서 광혜원의 사진에 서울대학병원의 전신이라는 설명을 붙이면서 비롯됐다.
두 병원이 해묵은 뿌리 논쟁, 누가 진정한 계승자인지를 놓고 벌이는 팽팽한 대립, 귀추가 주목된다.
/정준성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