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菊<수국>
/이문재
물그늘 비린내 생각난다 그 해질녘
민물같은 얼굴 빛 둥굴어지는 반달로 올라가
그윽하게 내 그리움 다스렸는데
내달려 건너와, 이렇게 돌아다보면
나는 늘 물수제비처럼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숭숭 구멍 뚫린 저 지난날들 사이로
오늘같이
빗물 듣는 날이면
귓바퀴에 갖다 대던 길섶 따수운 돌맹이
만지고 싶어지는데
수국 진다
물컹한 첫사랑 메말라 간다 하염없이
모래시계처럼 서 있는데
수국 간다 반달 다시
작아지고 여름날 해질 무렵
내 몸 무너진 몇 개의 서까래에
서편의 진한 놀빛 흥건하다
비릿한 기쁨 앗아간
스무번의 가뭄들아 홍수들아
수국 진다.
우리가 사는 동안 아프지 않을 사랑하나는 늘 가지고 산다. 세상을 살면서 성찰과 사색을 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자신을 회자정리하고 하나의 기억의 창고를 간직하는 일일 터이다. 세상과 늘 떨어진 삶들이 산업사회의 속력에 도덕적이지 못한 일들이 많다. 사람이란 이름으로 사육하는 메카니즘 세계 속에는 지난날 돌이키는 일 자체가 하나의 반역이다.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면 아프지만 자신을 들여다 볼 겨를이 없다. 시인은 수국이란 이름을 시상에 두고 기억하는 재생의 理性관에 몹시 괴로운 흔적을 발견한다. 이 세계를 바라보는 고통스러운 현실도 상황은 늘 예견할 수 없이 바뀌더라도 수국처럼 살 일이다.
/박병두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