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辭意)를 표명했다. 안타깝다는 표현을 했지만 박 대통령은 순방 중인 남미 현지에서 사실상 이를 수용했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던 이 총리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를 내놓게 된 것은 여론의 압력뿐만은 아닐 게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말바꾸기를 너무 자주 했다. 측근들에게 증인 회유를 시도하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게다가 검찰이 하이패스와 내비게이션 기록 추적, 그리고 휴대전화의 착발신 기록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자 더이상 버티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첨단을 살아가는 시대에 간단한 조사만으로 행동반경을 추적할 수 있는 과학수사가 그의 마음을 옥죄었을지도 모른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1(도)逃, 2부(否), 3빽(Background)’이다. 검찰 수사대상에 오르면 일단 ‘36계 줄행랑’이다. 다음으로는 오리발을 내민다. 그리고 최후에는 배경을 동원한다는 속설이다. 그러나 이건 옛날 얘기다. 수사대상에 오르면 검찰은 출국금지 조처를 취한다. 이른 바 ‘빽’을 동원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故 성 전 회장은 자살 직전 정권 실세인 ‘빽’을 동원하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것이다. 이른 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모두가 하나같이 부인하고 있다. 휴대전화의 착·발신 기록에 200건 이상이 남아있는데도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거리를 둔다.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1주일에 한번 전화하기가 쉽지 않다. 매주 해봐야 1년이면 50여 차례다. 하물며 100~210차례 성 회장과 서로 통화했다면 분명 친한 사이들이다. 실제 통화가 이뤄진 횟수는 가늠하기 어렵다지만 성 전 회장이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2~3일에 한번꼴로 이렇게 전화할 리가 만무다.
이 총리의 사표가 수리되면 이제 자연인의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다. 검찰의 부담이 덜해진다. 그러나 검찰도 이번 사건을 수사하기에 어려움은 있다. 정치자금 또는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이 망자가 됐기에 확실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조사대상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법무장관 검사 경찰청장 출신으로 법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뇌물사건에서 확실한 증거능력이 없어 무죄로 판결난 사례를 많이 보아온 이들이다. ‘성환종 리스트’도 심증은 있으나 아직 물증이 없다. 그러나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최측근인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를 22일 긴급체포했다. 야당 중진의 보좌관 출신이다. 그의 ‘입’에 국민의 관심이 모아진다. 8인은 또 떨고 있을것이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를 통해 기소하여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국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환자로 지목되는 홍준표 경남지사는 ‘6공 최고 실세’ 박철언 전 의원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시켰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상관이자 검찰총장 후보였던 이건개 고검장도 돈을 받고 슬롯머신 업계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로 구속했다. 이제 후배 검사들과의 법리싸움을 벌여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무섭게 휘두르던 칼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른 정권 실세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권력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일까?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어느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리오마는 한밤중에 주고받은 행위라도 아침만 되면 벌써 소문이 쫙 퍼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뇌물수수는 언젠가는 반드시 발각된다는 경고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子知我知)’. 준 자와 받은 자 간의 진실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추악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비리는 이번이 끝이어야 한다.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개혁을 못하기에 검찰이 대신 개혁에 나선 이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세상의 진리라는 게 이번에 또 입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