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선생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며 담록(淡綠)의 싱그러움을 수필로 노래했다.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에서 ‘청자빛 하늘이/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연못 창포잎에/여인네 맵시위에/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라일락 숲에/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하면서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했다.
김영랑의 시 ‘오월’도 빼놓을 수 없다.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러울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모든게 싱그런 오월이 시작됐다. 꽃과 신록, 눈부신 햇빛이 어우러진 산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시인들의 글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을 초록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하다. 덩달아 설레이고, 미루어 행복하고, 어딘가 떠나고 싶은 충동으로 코 끝 마저 간지럽다.
하지만 잠시 돌아보면 등 뒤에서 주는 압박감 또한 큰 달이기도 하다. 봄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기, 상대적 박탈감이 그 만큼 크기 때문이다. ‘없었으면 가장 좋겠다’는 달도 바로 오월인 이유와 무관치 않다. 행사가 많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 여기에 주변 지인들의 결혼까지 겹치다 보면 ‘ 품위유지’에 허리가 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 신록의 산천을 보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하기야 서민들의 마음이 언제 한번 편안하게 새달을 맞은 적이 있었을까 마는 자연은 이를 아는듯 모르는듯 변함없이 어린애 웃음 같은 신선함을 선사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정준성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