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다려도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있다. 어느 봄인들 그들의 만남을 허락했을까? 봄을 알리던 목련이 쓸쓸히 떠난 자리를 벌써 초록이 넉넉히 덮어주고 있다. 개동백도 그렇게 끝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던 끝에 사라졌다. 개나리 숲이 노란 꽃으로만 살더니 어느새 연둣빛 새싹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서로 엇비슷하게 어울려 보란 듯이 봄을 만끽한다. 대개의 식물들이 잎이 먼저 나와 꽃을 기다리고 꽃이 진 뒤에도 의연하게 한 해를 산다. 잎만 무성하거나 꽃만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꽃과 잎이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가 보는 사람에게도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늘 하시는 말씀이 정해져 있다. 언제나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내용을 외운지 오래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참 의연하시고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고 트인 분이라고 느끼지만 만남이 횟수를 반복하다보면 점점 식상하고 나중에는 슬슬 자리를 피하고 만다. 연세도 한 해에 두 살씩 드시더니 이제는 며칠 전에 여든 여덟이라고 하시던 분이 갑자기 구십에 잠깐 점을 찍고 바로 구십 넷이라고 하신다. 아무나 한 번 눈만 마주치면 나는 아들 딸 여섯인데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편안하게 혼자 살고 있으며 늘 베풀고 살아 아픈 곳도 한 군데도 없다며 자랑이 이어지신다. 예전에도 혼자 지내시는 할아버지가 어디라도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찾아가시고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대해 드리면 음식도 시켜주고 기분 좋으면 바람도 쏘이게 주선하시곤 하셨지만 얼마 못가서 싫증을 내고 부담스러워했다. 한 번 앉으시면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또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계셔서 거북하기도 하고 일방적인 선물공세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얘기였다. 혼자 식사를 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얼마나 힘들지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가족이나 단체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서로 오랜 시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비아냥조로 하는 말 중에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지만 어찌 보면 그 끼리끼리가 세상살이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학연 지연 등으로 기인되는 각종 이런 저런 게이트라는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피로가 쌓이는 오후 시간 꽤나 품격이 있어 보이려고 하는 여성이 들어온다. 인사도 받지 않고 말을 건네도 아랑곳도 않더니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여덟 명을 강조한다. 곧이어 아이들을 데리고 그 아이들 중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과 일행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 둘이 들어온다. 간단히 먹겠다는 말을 앞세우며 메뉴가 다른 음식으로 네 명분을 주문한다. 음식을 덜어 먹기 위한 앞접시는 제공한다고 치더라도 모든 짐을 다른 식탁위에 올려놓고 아이들은 계속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큰 소리로 떠들어도 어른들 중 누구도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무슨 스포츠 중계방송 나오는 곳 틀어달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다른 손님들 눈치가 보여 속을 졸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 자리는 처음의 품격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물이 흐르는 식탁, 사용하고 나서 아무렇게나 던진 냅킨과 비뚤비뚤 몸만 빠져나간 의자가 결코 조화를 이루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 앞에서 무엄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