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하면 으레 짐작가는 고정관념의 인식이 있다. 특혜시비와 뇌물, 불공정… 등등. 나의 청소년 시기 때인 80년대에도 또 90년대에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과도 같은 이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병무청에 대해 국민들이 혹시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내가 경기북부병무지청의 정책자문위원과 생계곤란심의위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과거의 이미지를 완전히 떨치지 못했으리라 본다.
병무청은 정말 일이 많다. 그리고 투명한 행정을 위한 사전작업과 검증작업, 외부전문가를 통한 객관적 시각의 열린 행정이 나를 놀라게 했다.
‘공무원=복지부동’. 그래서 ‘세금을 축내는 세금 식충이’라는 극단적 오명이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적어도 경기북부병무지청의 공무원이라면 말이다.
정책자문위원의 활동으로 경기북부병무지청의 다양한 기획과 국민과의 소통 노력이 얼마나 많은 땀을 통해 기획하고 진행했는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차다.
외부의 지역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형식적인 브리핑과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쇼일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각 부서의 보고를 통해 지난 행사와 기획된 결과물의 피드백은 냉정하리만큼 구체적이며 철저한 반성도 깔려있다.
“아, 병무행정이 이렇게 철저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구나.”
첫 번째 놀람이다.
정책자문위원의 톡 톡 튀는 제안과 이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담당 공무원의 모습은 영락없는 공복의 모습이었다.
징병검사 시스템은 감히 부정을 저지를 수 없도록 체계를 갖추고 2차, 3차의 검증과 객관적 검사를 위한 첨단장비를 구비하였다. 또한 징병검사에 대한 인포메이션의 역할과 민원해결의 시스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쌍방향소통으로 만족도를 높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생계곤란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가장 쇼킹한 사건이라 단언한다.
생계곤란심의위원회는 입영대상자나 입영중인 장병의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병역면제나 복무여부 등을 판정하는 위원회이다.
먼저, 대한민국에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리고 그 대상자의 현미경조사와 실사를 통해 혹시 모를 부정에 대비한 두꺼운(전화번호부2배의 분량) 서류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조사를 담당한 직원의 피곤어린 얼굴모습에서, 입술이 터져서 거칠어진 모습에서 조사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하려는 노고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철저히 그 기준은 국민에게 향하고 있었다.
징집이 되면 가족 전체가 붕괴되는 가정이 수두룩 했다. 조건만 따지고 결정했다면 위의 결과가 불 보듯 했다.
하지만 경기북부병무지청 공무원들은 엄격한 잣대와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의 범위에서 바라봤다. 공무원이라면 기준에 의해 재단하면 가장 쉽고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을 깨고 창조적행정을 보인 담당 공무원을 보면 우리 대한민국이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느껴진다.
업무의 양이 2인, 아니 3인의 몫을 하는 모습에서 사명감과 보람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경기북부병무청에서의 소중한 경험은 자칭 명예홍보대사가 되어 자연스럽게 알리고 자랑하게 되었다.
2년 넘는 경기북부병무지청의 위원회 활동으로 얻은 것이 참으로 많다.
국민과의 끝없는 소통 노력과 투명한 행정, 그리고 인간미가 있는 시선, 직원들간의 끈끈한 유대와 부서간의 연대의식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지청장의 부드러우면서도 존중과 자율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은 자발성을 만들어내고 상호 끈끈한 협력관계를 만들어 낸 중요한 요인이라 본다.
정량적 수치인 2014년도 제안활성화 최우수, 전화만족도 1위 등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경지북부병무지청에서 조국의 희망을 보았으며, 병역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