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나팔
/한미영
안개비탈에 두릅이 많이도 피었다
굵은 가시를 몸에 박은 채 안개 속에서도
두릅나무는 자식을 쑥쑥 잘도 키워낸다
뚝뚝 다 따도 삶으면 몇이나 되나
자식이 다섯인 노모는 향긋한 산두릅에서 식욕을 되찾는다
엊그제 잘라냈는데 어린애 주먹만 한
것들 또 달렸다
낳아만 놓으면 잘도 자라주는 내 새끼들
노모는 또 두릅나팔을 분다
새벽안개가 순식간에 걷힌다 손 안대고 코를 푸니
형님은 자식이 잘 자라서 좋겠수
빈정대는 아침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는
늙은 두릅나무
그 밑둥치를 동면 깬 뱀이 스윽 지나간다
아무 죄책감도 없이 노모는 깜짝 놀라
하필 밤송이 위에 덜컥 주저앉는다
아아아 길게 울리는 나팔소리
노모는 아예 두릅나무가 된다
내 힘으로 저 엉덩이에 늘어박힌 가시를
다 뽑을 수 없다 빼내지 못한 가시가
새까맣다
이른 봄 산골 마을에는 집 뒤로 두릅이 지천으로 핀다. 그 때 마을 사람들의 밥상엔 한동안 두릅이 올라온다. 화자도 아직 안개가 가시지 않은 희뿌연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입맛이 없는 노모를 위해 산비탈로 올라가 두릅을 딴다. 화자는 두릅나무를 보며 자식이 다섯이나 있어도 늘 외로운 노모를 떠올린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딸과 떨어지기 싫어 뒤따라 산에 올라온 노모는 그만 뱀을 보고 놀라 덜컥 밤송이 위에 주저앉는다. 화자는 노모의 엉덩이에서 밤 가시를 뽑으며 생각한다. 엉덩이에 수없이 박힌 가시가 노모의 굴곡진 인생과 같다고…. 다 뽑을 수 없는 가시처럼 새까맣게 변한 노모의 인생이 봄이 되면 두릅나무처럼 다시 새순을 피울 수는 없을까? 허리 구부정한 노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픈 날이다. /송소영 시인·수원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