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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여름의 서정

 

들에 나서면 푸른 것들의 수런거림으로 왁자하다. 가뭄에 더디기만 하던 참외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가지며 고추가 키 재기를 하듯 앞 다퉈 크고 있다. 그 녀석들 바라보는 재미로 아침이 기다려진다.

낮엔 누가 볼까봐 밤에만 자라는지 자고나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옥수수도 제 몫의 계절을 키우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붉게 꺼내놓은 수염이 며칠사이 마르고 나의 관심도 슬슬 옥수수에게 쏠린다. 수염이 마르면 먹을 때가 된 것이다.

어릴 때는 밭의 울타리가 옥수수였다. 무쇠 솥에 옥수수를 가득 넣고 불을 지피면 무쇠 솥이 눈물을 흘리고 옥수수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났다. 한 김 푹 올리고 나서 뜨끈 뜨근한 옥수수를 소쿠리에 가득 담아 툇마루에 걸터앉아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돈다.

우리 밭은 만물상이다. 참깨 두어 줄, 토란 몇 개, 수박 다섯 포기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이곳에도 있다. 토마토가 실하게 열렸는데 대추 토마토가 한 포기 시름시름 마르더니 이번에 큰 토마토도 마르기 시작한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줄기를 잘라보고 뿌리를 캐 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이곳에서 자라는 것이 야채들만은 아니다. 땅 밑에 달팽이가 집을 만들고 청개구리가 폴짝거리며 뛰어 논다. 토란잎에서 물방울 구르는 모습과 청개구리가 뛰어다니는 모습이 하도 예뻐서 풀은 안 뽑고 한나절 내내 그 놈들만 바라본 적도 있다.

호박벌이 분주히 드나들고 나면 애호박이 열리고 감꽃이 떨어지고 벌써 어른 손톱 크기로 감이 열렸다. 가끔은 고라니가 튀어나와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하고 고 녀석이 콩잎이며 고구마 순 등 여린 잎을 따먹어 화도 나게 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참 좋다.

농사는 하늘 농사가 제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하여 콩을 심을 때 세 알을 심는 것이 하나 땅 속 벌레들의 몫이고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이고 나머지 하나가 사람의 몫이라던 먼 조상들의 지혜를 생각해보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일찍이 터득했음이다.

울타리 콩도 뜨겁게 달궈진 태양을 감아올린다. 줄기를 뻗어 허공을 감아올리려 애쓰다 서로 뒤엉켜 바닥에서 고개만 휘 젖고 있더니 지지대를 세우고 그 위에 망을 씌우니 망을 타고 올라가 쭉쭉 가지를 뻗고 있다.

콩에도 눈이 있나 싶다. 어떻게 알고 망을 감아올리는지도 신기하고 가뭄에 지지부진하더니 며칠 작은 양이지만 비가 오고 나서는 하루가 다르게 가지를 뻗고 마디를 늘여간다.

자연과 소통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들판에 나서면 알게 된다. 말은 없지만 가장 정직한 것이 땅이다. 보살피고 손길 닿는 만큼의 기쁨과 보람을 준다.

내 손으로 키운 고추를 밥상에 올리고 애호박을 따서 이웃과 나누는 수확의 기쁨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이다. 물론 취미로 이것저것 심다보니 수확에 연연하지 않아 그렇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서 함께 소통하고 더불어 살아감이 참으로 좋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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