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교육방송에서 들은 얘기다. 강사는 잘 모르겠으나 강의 제목은 ‘고슴도치 행복론’이었던 것 같다. 제목은 고슴도치인데 시작은 논어로 해서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유여자여소인(唯女子與小人), 즉 여자와 소인에게 있어서 위난양야(爲難養也) 함께하기가 쉽지 않다. 여자와 소인은 근지즉불손(近之則不孫)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원지즉원(遠之則怨) 멀리 하면 원망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자들이 들으면 여성비하가 아니냐고 곧 항의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나왔던 내용인 만큼 의미만 해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대비시킨다면 여자와 소인배에 한정된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이들을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 하면 원망을 하고 비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고슴도치 이야기를 이어갔다. ‘북극에는 호저라는 고슴도치과의 동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칼바람을 견디기 위해 자기들끼리 껴안는다고 한다. 그러나 가시가 달려 있기 때문에 껴안았다가도 곧바로 물러난다. 그러다 추워지면 자신의 체온 유지를 위해 다시 껴안는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곧 떨어진다. 이렇게 하길 수만 번. 그렇게 해서 얻은 지혜로 지금은 서로 가시에 찔리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체온을 전달해 준다. 불과근불과원(不過近不過遠). 사실 기자들을 상대할 때 지침처럼 되어 있는 이 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강의 내용처럼 가까이 하게 되면 간섭부터 시작해서 예의가 없어지는 부분들이 있고, 멀리 하면 고독해지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갈등 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학교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는 학생들도 서로 갈등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며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 몸이라 말하는 부부 사이에도 갈등은 피할 수 없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녀들과도 갈등이 존재한다.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게 갈등이다.
개인적인 갈등 이외에 사회를 들여다보면 더하다. 종류도 다양하다. 태생(?)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갈등에서부터 종교적 갈등, 경제적 갈등, 계층 간의 갈등 등등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갈등이 우리나라만큼 많은 나라도 아마 드물 것이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현실 속에 보수와 진보 등 이념문제로 인한 갈등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반복되는 상황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갈등 없는 삶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반문까지 생길 정도다.
최근만 하더라도 그렇다. 국정원 직원의 자살사건으로 여야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양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죽음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 루머까지 양산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야권 내부에선 당 개혁을 놓고 의원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여권 내부에서는 당청 간의 갈등이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사실 정치권의 갈등구조를 들여다보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보잘것없는 이익, 특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티격태격하다가 생긴 갈등에서부터 생각이 달라 틈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갈등이 대부분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대의(大義)적인 갈등이라면 좀 낫겠는데 말이다.
갈등이 없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다만 갈등을 풀어가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이 문제이다. 그 방법을 가장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능이 정치라고 한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의 리더십도 정치라는 열쇠로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과 다르지 않다. 이런 사실은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진리지만 아직도 정치인들만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나라 전체에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