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물도
/박노빈
염소똥이 오르고 흑염소가 오른
한 순간에 나를 가루로 몸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릴
바다의 푸른 입, 아름다운 입이
자기장을 뻗어 빨아들이고 있다
양쪽에서 인생은 찰나를 딛고 사는
낭떠러지 위
헛발이라고, 현기를 달래는 동백 한
그루뿐이라고
흑염소는 네 발로
높다란 천야만야한 바위에서 사뿐
뛰어내린다.
저 염소의 거룩한 작약(雀躍)
동백꽃 함께 눈물 듣던 그 폐교
아름다운 외로움의 바닷길 위
수천길 기암의 뾰족한 직벽
모래알의 추락이 무섭다
정수리에 딱 한발작 딛을 모랫길이
사람의 길, 번개와 천둥을 거머쥔
사람의 아들
잡초 우거진 운동장, 탐스런 수국이
절벽을 친다
동백꽃 피고 져도 육지는 먼데
시인은 소매물도에서 가파른 절벽길을 걷고 있다. 위로는 기암절벽이요, 아래로는 깊고 푸른 바다여서 두려움을 느끼는 중 현기증을 달래는 붉디붉은 동백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저만치 앞서가는 흑염소떼는 마치 점점이 염소똥처럼 보이는데, 가만 보니 높디높은 바위에서 사뿐히 뛰어내린다. 신통한 염소의 절벽타기를 보라. 인생은 마치 찰나를 딛고 사는 낭떠러지 위 헛발이라 여기며 조심스레 외줄기 절벽 모랫길을 걷고 있는 시인. 이루지 못할 사랑의 대명사 동백꽃은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장터의 슬픈 역사를 함께 하고, 떨어져 누워 있어도 그 생생한 꽃송이로 추하지 않고 당당하며 기품을 뽐낸다. 인적이 끊긴 폐교 운동장에 잡초는 우거지고 수국은 탐스럽게 벌어져 절벽을 친다. 아름다운 동백꽃은 추위를 견뎌 꽃을 피워내고 지건만 봐주는 이 없는 외롭고 아름다운 섬 소매물도를 인생의 한 모습에 비유한 감동적인 시다. /권월자 수필가·수원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