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술에 취한 사람을 가리킬 때 ‘주취자(酒醉者)’라고 하는데, 주취자는 사실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술에 취한 사람을 가리킬 때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인 ‘주취자’보다는 ‘취객(醉客)’이나 ‘취인(醉人)’으로 쓰는 것이 바르다고 하겠다. 술 취한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심야에 쓰러진 ‘취객’을 무더운 여름밤이 되면 현장을 뛰는 경찰관에게 112신고가 폭주하는 시간에는 그런 ‘취객’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취객’은 경찰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필자가 모셔다 드린 50대 남자분의 따님은 당시 아버지께서 자신과 통화를 하다 끊어졌는데, 한동안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에 경찰관에게 걸려온 전화로 안심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따님은 필자에게 “마치 제가 부모님을 대한 것처럼 안전하게 모셔다 주셔서 안심이 되었다”며 감사함을 알려왔다.
미국의 영성가 헨리 나웬이 어느날 그의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 구경을 갔다. 그네타기 곡예사 다섯 명이 멋진 묘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세명은 ‘나는’ 역이었고, 두명은 ‘잡는’ 역이었다. ‘나는’ 사람들은 공중으로 치솟았다. ‘잡는’ 이의 강한 손에 붙들리기 전에는 모든 것이 아슬아슬했다. 그는 곡예사들의 용기에 감탄했다. 나웬은 이 아름다운 공연을 보고 ‘맡김’의 원리를 깨달았다.
고단한 삶을 그네 타기하듯 곡예사들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우리의 가족에게 강력한 ‘잡는’ 이의 역할에 충실해야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집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매는 ‘취객’이 경찰관에게 행복을 안겨준다는 믿음으로 아슬아슬한 가족의 불안한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주는 ‘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